카테고리 보관물: 미국 부동산

미국 부동산 정보 , 플립 하우스, 경매 정보, 경매 리스트 업데이트

[시원스쿨 중국어] NEW 왕초보 중국어 시리즈

정말 시원 시원한 중국어 강의 입니다.

윤주희 선생

중국어 윤주희-시원스쿨

[시원스쿨 중국어] NEW 왕초보 중국어 1탄 1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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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스쿨 중국어] 중국어 문법 무료강의 1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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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스쿨 중국어] 중국어 문법 무료강의 2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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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스쿨 중국어] 중국어 문법 무료강의 3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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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스쿨 중국어] 중국어 문법 무료강의 4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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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스쿨 중국어] 중국어 문법 무료강의 5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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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스쿨 중국어] 중국어 문법 무료강의 6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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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스쿨 중국어] 중국어 문법 무료강의 7강(기본 총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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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스쿨 중국어] 중국어 문법 무료강의 8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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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스쿨 중국어] 중국어 문법 무료강의 9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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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스쿨 중국어] 중국어 문법 무료강의 10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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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생활 전화번호

긴급전화  *화재, 범죄, 응급  911   *가정 폭력 718-460-3800    *성추행 718-460-3800   *어린이 학대 800-342-3720
뉴욕 총 영사관 646-674-6000
교통안내  * 교통국 718-966-6155    * 교통위반 718-488-5710     * 주차위반 800-676-3979
NYPD 에 토잉(차 가 끌려 감) 되었을때 * 맨하탄 212-971-0771  * 퀸즈 718-786-7122  *브루클린 718-694-0696  *브롱스 718-585-1385
주택관련  * 렌트 718-739-6400   * 난방 212-863-5000
전화 (인터넷) 가설  * VERIZON 800-837-4966   * CHARTER (TIME WARNER CABLE) 877-227-8711    * AT & T 866-937-2412   * SPRINT 888-211-4727
공항   * 케네디 공항 718-244-4444   * 라과디아 공항 718-533-3400   * 뉴왁 공항 973-961-6000

<<<<잘못 됐거나 필요한 전화번호 알려 주시면 큰 도움이 됩니다. >>>>>>>>>>>>>>>>>>>>>>>e-mail: omynewsus@gmail.com

 

경매로 부동산 매입하기 2- bid4assets.com

http://bid4assets.com 에는 매도하는 물건의 종류가 Land, House, Commercial building, Jewelry, Coin 등이 있는데 여러 state에 있는 County 에서 Tax를 체납 한 물건이 많고 간혹 쉐리프(일종의 상급경찰 기관)에서 벌금 대신 차압 한 물건 등도 나옵니다.  개인이나 회사에서 나온 물건도 있습니다.

bid4assets

물건의 가치 Value

$1에 경매를 시작하는 물건도 있습니다. 주택도 있고 땅도 있습니다. 대개는 안 팔리는 물건이 주로 나온다고 보면 됩니다 만 간혹 본인이 거주하거나 먼 후일을 본다면 가치가 있는 물건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치 상승하는 일이 거의 희박하고 십년 이후 일지 아니면 영원히 기회가 없을 수도 있지요. 때로는 오래 된 도시의 다운 타운이거나 시골입니다.  관심이 있거나 하는 물건이 있다면 제가 항상 하는 말이지만 “현장답사“잊지 마세요. 단돈 $1라도 기부를 한다면 모를까 허비할 필요가 없겠지요. 저도 큰 돈은 아니지만 이미 잃어 본 경험 이 있는 부끄러운 과거가 있습니다. 본인이 시간과 기술을 투자하고 집 주위를 담장 , 게이트 와 CCTV 설치하고 하면 웬만 한 지역은 사는데 무리가 없습니다. 저도 그렇게 살아 봤구요. 그렇게 하면 사람마다 기대치가 다르겠지만 조금은 이익이 생깁니다.

경매 참여 방법

  1.  가입을 합니다.
  2. 신용카드나 데빗카드를 등록 합니다.
  3. 물건을 검색해서 고릅니다. 절대 서둘지 말고요. 마음에 드는 게 없다면 안 하는게 정답입니다.
  4. 찿았나요?  여기서 스탑/ 답사를 먼저 하세요. 만일 답사를 시간 놓쳐서 못했다면 포기 하세요.
  5. 답사 후에 응찰을 합니다. 자기가 등록해 놓은 카드를 이용해서 보증금(디파짓)을 납부 하고나서 본인이 금액을 적어 넣고 클릭 하면 됩니다. 이때 아예 마음에 정한 상한 금액(최고가)을 적어 넣고 기다리거나 경매 마감 직전에 가격을 넣는 방법이 있습니다. 마감 직전에 하면 낙찰 가능성은 높아지지만 열고 해서 가격이 때로 터무니 없이 높아 지기도 합니다.
  6. 낙찰을 받으면 대개 셀러 측에서 연락이 오고 안내에 따라서 대금을 납부하고 증서를 받게 되는데 낙찰 전에 셀러측에서 어떤 증서를 제공하는지 학인 해야 합니다.  타이틀을 가질 수 없는 것도 많이 있습니다.
  7. 셀러측에서도 bid4assets.com에 각종서류를 등록해서 셀러 자격 검증을 거치기에 사기 사건은 아직 듣지 못했습니다. 저도 낙찰 후 약 3 개월 후까지도 DEED를 못 받아서 환불 받은 적이 있습니다, 제 추측에 너무 낮은 가격에 낙찰 돼서 셀러가 애를 먹이다가 제가 환불을 요구하니까 돌려 준게 아닌가 싶네요.

도움이 되시길 바랍니다.

 

퀘이커교회(뉴욕) 첫 방문하다

수십년 전부터 퀘이커(Quaker)에 대해선 들어 본 적이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단이라고 해서 가까이 가는 것을 기독교인들은 모두 꺼리고, 나 또한 잘은 모르지만 알아 볼 생각은 꿈에도 없었다. 미국에 살면서 한국의 교회와는 너무 나도 다른 한인 교회 생활은 적응하기도 힘들었지만 나를 점차 변하게 했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나 사교장이라는 느낌이 신앙 공동체 보다 더 강한 느낌으로 내게 다가 왔다. 그러던 중 어느 분이 원어 성경으로 가르치는 목사님이 있다기에 설교 테입을 빌려서 듣기 시작 했고 이것이 원어 성경을 알아 보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원어로 된 대역 성경을 사서 설교 내용과 비교 하면서 기존의 교회와 교단, 신학교가 전통과 교리 지키기에 열심이고 잘못된 부분을 고쳐 나가는 데는 너무나 소홀히 하는 것이 점차 보이게 되었다. 몇 몇 목사님들을 만날 기회가 있을 때 마다 그러한 점들을 논해 보았지만 답은 없었다. 성경에 명백히 기록 되지 않은 것이고 교단 마다 다른 주장들도 안 믿으면 지옥 간다는 말을 하며 겁박하는  목사님 도 있었다. 이런 와중에 다니던 교회에선 다른 교회를 알아보라 는 말을 목사님으로 듣게 되었다. 결국 알아서 나가라는 말이었다. 하다 보니 교회 나가는 것이 교제 외에는 기대 할 것이 없게 돼 버렸다.  몇 개월 전 부터 그나마도 싫어져서 교회 출석을 안하고 있다가 뉴욕으로 이사 오면서 마침 퀘이커 교회가 근처에 있는 것을 알게 됐고 호기심 반 기대 반 오늘 3월26일 2017년 참석하게 됐다. 뉴욕의 사적지로 지정 된 건물이라 하는데 허름한 건물에 나까지 14명 참석 한 것인데, 첫 인상은 너무 나도 겸손해 보인다 할까 였고 예배는 한 시간 이었다.듣던 대로 조용히 기도와 성경을 읽으면서 있다가 감동을 받은 사람이 입을 열어 말하는 사람도 있고 성경 구절을 읽는 사람도 있었다. 한 주간 내 내 기도도 아니하고 사는 데 공식적으로 한 시간 기도 시간을 부여 받은 느낌을 갖게 했다. 예배 후 알리는 시간이 있었다. 퀘이커 교의 주장을 정리한 4페이지의 프린물을 주기에 그 시간에 찬찬히 읽으며 생각해 보았다. 잘은 모르겠지만 ” 모든 사람에게 영성이 있어서 옆에서는 그것이 자라게 도와 주면 하나님의 사람으로 자란다”는 대 원칙은 공감이 됐다. 목사도 없는 교회, 생소 하지만 더 알아 봐야겠단 생각이 든다.  이모 저모 사진에 담아 보았다.

 

이 슬라이드 쇼에는 JavaScript가 필요합니다.

주소: 137-16 Nothern blvd Flushing NY 11354

QUAKER( Friends Meeting)

LAND BANK 에서 부동산 구입, 수익올리는 방법

LAND BANK에서 부동산 구입하는 방법

예; 뉴욕 서폭 카운티 랜드뱅크 홈페이지

ny suffok county land bank

  1.  인터넷에서 원하는 지역에 랜드 뱅크가 설립되어 있는지 검색을 합니다. 설립되어 있지 않은 곳도 많습니다.
  2. 랜드 뱅크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부동산 리스트를 검색하거나 직접 방문하여 인쇄된 리스트를 요청 하여 매물을 찿습니다.
  3. 리스트에서 원하는 매물을  찿았다면 현장 답사를 합니다.
  4. 현장 답사 후  매입하기로 마음 먹었으면 매입하려는 가격은 대개 리스트에 적혀 있으므로 그 랜드 뱅크에서 정한 금액을 오퍼 합니다.(대개 캐시어스 쳌 이나 머니 오더로 지불 합니다).
  5. 랜드 뱅크에서 지정한 기일까지 다른 매입 희망자 없으면 그대로 정한 금액에 낙찰 됩니다.
  6. 만일 다른 사람도 오퍼를 해서 경쟁이 되면 경매일자가 정해지고 그 날자에 나와서 서로 응찰가를 제시하고 (대개 구두로 금액을 말합니다) 최고가를 내는 사람에게 팔립니다.
  7. 지정된 기일에 잔금을 납부하고 나면 약 한 달 후에 DEED를 받게 됩니다.
  8. DEED의 종류는 랜드 뱅크마다 다릅니다. 타이틀이 되는 경우도 있고, quit claim deed인 경우도 있습니다.
  9. 대개는 quit claim deed입니다. 이 증서는 타이틀 인슈어런스 컴퍼니에서 커버하지 않습니다. 약 5년이 지나서 커버 합니다.
  10. quit claim deed의 경우는 바로 집을 되팔려면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높은 소득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그 이유는 일반인 들이 이 증서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에 두려워서 타이틀을 얻지 못하는 물건은 기피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quit claim deed 부동산으로 수익 올리는 방법

  1. RENT 를 이용합니다. 렌트의 경우는 테넌트가 타이틀에 신경 쓸 일이 없습니다. 5년 후에 타이틀 컴퍼니에서 커버가 되는지 확인 후에 판매 하면 됩니다.
  2. 직접 거주하는 방법입니다. 주인이 되어 5년 정도 거주 후에 타이틀 컴퍼니에서 커버가 되는지 확인 후에 판매 하면 됩니다.

상가 건물

  1.  드물지만 발품을 팔면 상가 건물이 종종 있습니다.
  2. RENT 를 이용합니다. 렌트의 경우는 테넌트가 타이틀에 신경 쓸 일이 없습니다. 5년 후에 타이틀 컴퍼니에서 커버가 되는지 확인 후에 판매 하면 됩니다.
  3. 직접 상점을 운영하는 방법입니다. 주인이 되어 5년 정도 운영하거나 후에 타이틀 컴퍼니에서 커버가 되는지 확인 후에 판매 하거나 가게만 팔고 렌트로 수익을 올립니다. 이 경우엔 상점 판매로 목돈을 쥘 기회도 있습니다.

*** 중요한 개요만 적었습니다. 실제 상황은 많이 다를 수도 있습니다. ***

경매 방법 1. 옥션.컴 소개/부동산경매 인터넷 사이트

이 사이트(https://www.auction.com/)는 미국 전역의 부동산 경매 전문 이다.  취급 대상은 포어크로저(차압) 물건, 일반인 이 파는 물건, 상업용 건물, 주택, 등 이 대표적 이다.

auction

이용방법

  1.  회원 가입
  2. 카드 등록: 가짜 경매 를 막기 위해서 카드를 등록 하고 보증금을 내야 경매 입찰에 참여 할 수 있다. 실적이 있는 경우 보증금을 면제 해 주기도 한다.
  3. 서치: 자기가 원하는 물건을 찿는다. 자기가 입찰을 원하는 물건을 찿은 후 저장 해 놓고 추적 할 수 있다. 그런데 경매 가 끝난 후 얼마에 낙찰 되었는지 보여 주지 않아서 아쉬운 점이 있다. 알아 볼 수 있는 방법 중 한 가지는 질로우.컴(https://www.zillow.com) 에서 주소를 넣고 검색하면 되는데 그 결과가 보통 4주~8주 후에 나오기 때문에 시일이 많이 걸린다. 클로징 등이 끝나고 소유권이 이전 되면 자료가 업데이트 되기 때문이다.
  4. 지역별로 검색이 가능하다.
  5. 라이브 옥션(경매장에 가서 입찰) 과 온라인 옥션(안터넷) 이 있다.
  6. 라이브옥션에서 낙찰된 사람은 캐쉬어스 첵(수표)나 머니오더로 경매장에서 대금을 납부 해야 한다.
  7. 온라인 옥션에서 낙찰 된 사람에게는 옥션의 다담당자로 부터 전화와 이메일이 와서 대금 납부와 명의 이전 절차를 시작 하는데 맨 마지막에는 타이틀 인슈런스 컴퍼니에서 클로징을 마무리하고 타이틀을 보내준다. 이모든 과정이 얼굴을 보지 않고 증명 서류만이 오고 가고 해서 처리 된다.

주의 할점

  1. 인터넷에서 마음에 드는 물건을 찿으면, 객관적인 자료를 검색해서 검토한다.
  2. 입찰 하기로 결정 했다면, 주변에 전문가가 있다면 조언을 구한다.
  3. 정말 중요 한 것: 현장 실사이다. 아무리 인터넷이나 조언으로 결정했어도 이과정을 빼고는 입찰 하지 말아야 후회를 줄일 수 있다.  막상 현물을 보면 물건의 환경이 않 좋다 든가, 느낌이 바닥으로 내려 가는 경우 등 여러가지 생각지도 못한 것을 발견 할 수 도 있기 때문이다.
  4. 100% 확신을 가지고 경매해서 매입해도 손실을 볼 수 있다. 따라서 기대치를 낯 추고 단타 매매 보다는 몇 년 후를 생각해서 도전한다면 실수도 줄이고 이익도 볼 수 있을 것이다.
  5. 열고를 하지 말아야 한다. 고스톱 칠 때 열고를 하는 사람이 따는 예가 거의 없듯이 라이브 옥션이나 온라인 옥션이나 마찬 가지이다. 미리 물건의 가치를 정 한 후  자신이 정한 금액 이상으로 절대로 응찰하지 않아야 한다.
  6. 특히 온라인 옥션을 하다 보면 열고를 하는 경우를 많이 보는데, 셀러 측의 농간 일 수도 있다.

*** 이 소개는 개략 적인 소개이므로 옥션.컴 사이트에서 이용 약관을 읽고 세밀히 검토 하시고 이용 바랍니다. 이용 결과는 옥션 사이트와 이용자와의 계약 하에 모든 책임이 있습니다.

 

무료 이벤트 & 회원제

이 정보는 지역 정보지의 게시판에서 발췌 한 것입니다. 서비스가 되지 않을 수도 있고, 변경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꼭 사전에 전화 하셔서 확인 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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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ssential 플랜: 소득에 따라 월보험료 $20이하, $0 Deductible (연중 수시 가입 가능) 2.메디케이드 및 어린이 건강보험신청 ** 건강보험 ‘특별가입(SEP)’ 조건에 해당 되는지 문의 바랍니다.
162-23 Depot Rd. Ste #202 Flushing, NY 11358 <조은보험>
☎917-750-5424(C)/718-886-5792 (O)

무료 문화 교실

무료카페 & 문화교실 오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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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기적 다 민족 공동체 모임: 주일 오전 영어 주일 학교 연령별 모임: 10AM-11AM 주일 오전 대 예배 (영어 예배): 11:15 AM-12:30  PM -한국어, 중국어,스페인어 번역을 매주일 제공함

2. 2016년 하반기 무료 성인 다민족 언 어 학습 교실- 무료 커피와 베이글 제공/ 교재비 별도 개인 부담 (Bandi Books dp서 할인: Nazarene 언어카페 할인요청을 해야 함)
– 수강 기간: 2017년도 학기,  3개월 간격 /수시, 등록 가능.

시간과 과목 변동이 있을 수 있으니 강의 스케줄을 전화 문의 하세요.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 수업,원어민 영어 초/중급 회화 : 10:30 AM – 2:30 PM (원어민 지도) 기초영어 문법&회화: 10:30 PM-12:00 PM ,  일본어 반:기초 회화 1:00-2:00 PM(학생 모집 중 등록 요함)
문의: 516-749-1744 (이재숙 선교사),  주소: 45-11 149th St. Flushing, NY

안철수

안철수안철수

나무위키에서 퍼온글 입니다.최근 수정 시각: 2017-03-19 12:53:17-0400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의 역대 당대표
창당 초대
김한길/안철수
국민공감혁신위원장
박영선
국민의당의 역대 당대표
창당 초대
안철수/천정배
비상대책위원장
박지원

1. 개요2. 인생

2.1. 어린시절과 학창시절2.2. 가정사2.3. 군복무2.4. 의사, 백신개발자2.5. 경영인

2.5.1. 안철수 재직 중 V32.5.2. 안철수 퇴직 후 V3

2.6. 교육인

2.6.1. 비판

2.7. 정치인

3. 비판 및 논란4. 알려진 품성5. 이야깃거리6. 저서7. 선거 이력8.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정치인, 기업인, 프로그래머, 의사, 교수.

서울대학교 의학과를 졸업한 의사이자, 국내 최초로 컴퓨터 바이러스를 치료하는 안티 바이러스 V3를 개발하고 이를 백신으로 불리게 만든 한국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는 프로그래머다. 이후 IT기업 안랩(안철수연구소)을 만들어 대주주가 되었고, 서울대학교와 카이스트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현재는 국민의당 소속 정치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매우 다채로운 이력을 가진 인물이다. 서울대 의사로 출발해 국내에서 최초로 백신을 개발한 프로그래머가 되었고 성공한 벤처기업인, 서울대 교수를 지내며 지금은 국회의원이 되었다. 정치인이 되기 이전까지도 다양한 이력을 보유하고 그 모두를 성공하며 많은 커리어와 업적을 쌓았고, 이를 바탕으로 국민에게 신뢰와 인기가 늘어났다. 이후 본격 정치인이 된 이후에는 그의 지난 인생 못지않게 혹독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 정치인으로서도 그의 바람을 이루게 될지 사람들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20대 총선에서 더민주를 포함한 3자구도에서 국민의당의 후보로 나와, 서울 노원구 병에서 50%가 넘는 득표율로 당선되었고 현재 대권 주자로 거론되고 있다.

2. 인생[편집]

2.1. 어린시절과 학창시절[편집]

의외로 중학생 시절까지는 그다지 우등생이 아니었다고 한다. 반에서 중간 정도 하는 성적이었으나[5] 대신 독서광이었다고 한다. 학교 도서관에서 매일 책을 빌렸고 빌린 책은 몇 권이든 하루 만에 다 읽어서 바로 다음날 반납했는데, 사서교사가 이를 보고 ‘얘가 일부러 장난 치는 거 아닌가’하고 의심하기도 했다고. 어릴 때 꾸준히 독서를 한 결과인지 고등학생 때부터는 성적이 일취월장해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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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9811.png

그 결과 서울대학교 의대에 진학할 수 있었다고 한다. 무릎팍도사 안철수편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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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가정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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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경 서울대학교 교수1988년 결혼하였다.

2.3. 군복무[편집]

2.3.1. 군의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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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NISI20120919_0007056974_web.jpg
훈련소 시절(좌측 이미지). 오른쪽이 안철수.

좌측 이미지는 3사관학교 산하 화산유격장 산악교장으로 추정. 3사관학교 부대마크와 사관후보생 번호표를 군복에 부착하고 있는걸로 봐서 육군 3사관학교 의무사관 후보생 기초군사교육 과정중이다. (해군 공군 특수사관후보생들은 기초군사훈련은 육군에 위탁한다.) 참고로 저 사관후보생 계급장은 육군 학사사관 및 육군 특수사관에 해당하는 후보생용 계급장으로 ROTC및 각 군 사관학교 4학년 생도보다 높은 계급이다.

대한민국 해군 군의관으로 복무했다. 최종 계급은 대위. 해군 의무병과 인원들의 특성상 해병부대에서도 근무했기 때문에, 해병대와도 인연이 있다.

2.3.1.1. 군 관련 의혹과 해명[편집]

해군 군의관 시절, 주말마다 진해에서 서울비행기 타고 왕래한 것 때문에 위수지역 이탈 문제가 논란이 된 적이 있었는데 이는 독재권력이 집중된 역사가 보인 육군 위주의 사고방식에서 비롯된 오해이며, 위수지역 개념이 없는 해군은 규정상으로는 문제 없었다. 오죽하면 해군 관계자마저도 열불날 일이란 걸 애써 참으며 ‘이것은 문제없다’고 답변했을 정도이다. 해병대 역시 제2해병사단만이 수도군단 통제를 받아[6] 위수지역 개념이 있고 제1해병사단은 신속대응부대를 제외하고는 2시간 내 복귀, 그리고 섬인 제6해병여단제9해병여단은 따로 위수지역이 없다. 배를 타지 않으면 섬을 못 벗어나기 때문이다. 애초 해군은 육군과 달리 지역이 아니라 시간제이다.[7]

2.4. 의사, 백신개발자[편집]

세계 최초의 백신은 1987년에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데#[8] 안철수의 백신 배포 시기도 굉장히 빠른 축에 속한다. 당시의 소스 코드

2.5. 경영인[편집]

경영자로서 모범적인 경영을 하였다. 안철수연구소의 대표이사로서 재직중인 당시에 절대 차입경영[9]을 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모범적인 벤처기업 경영의 사례로 손꼽는 이들이 많다. 또한 안철수연구소에서 채용을 할때 학력, 외모, 성별 등을 따지지 않는다. 이게 당연한듯 보여도 아직도 많은 기업들은 학력을 대졸 이상으로 못박는다. 관련 내용[10] 물론 위에서 부채가 적으므로 좋은 회사라 표현했으나 부채가 있는 회사라고 하여 부실한 회사를 뜻하지 않는다. 부채가 없는 회사는 외부의 압력을 받지 않기 때문에 내부의 붕괴로 자멸한다는 것과 부채가 없으면 공격적인 전략을 취하지 못한다는 점 때문에 현대 회계에서는 일정량의 부채가 있는 것을 중요시하기도 한다. 단, 당시 안철수연구소는 이렇다할 수익모델이 없이 필요성만 보고 백신을 개발하던 회사라 누군가 투자하지 않는 한 애초에 돈을 빌려올 능력이 안되는 회사였을 수도 있다. 결국 금융권에선 회수 가능성과 수익 가능성을 볼 수밖에 없으니.

또 하나 그가 대인배인 이유는, 98년 IMF가 터지기 바로 직전에 해외기업 McAfee에서 1000만불에 Ahnlab을 파시오라는 제의를 거절했다는 것이다. 이때 만약 1000만불에 팔았다면 지금 국내에 V3라는 이름의 백신 자체가 아예 없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물론 대인배라기보단 선뜻 그렇게 많은 금액을 내걸고 사겠다 달려드는걸 보니 이게 그만큼 가치가 있다는 방증으로 받아들이고 냉정, 침착한 판단을 내렸다고 볼 수도 있겠다. 아니면 둘 다 고려된 것 일지도 모른다. 안철수 말로는, ‘안랩을 팔면 결국 V3엔진을 폐기해야 되는데, 차마 그럴 수 없었다’ 고.[11] 어쨌든 1000만 달러의 유혹에 훅 가지 않은 것만 해도 냉정한 판단력이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12] 여담이지만 맥아피 창업자 존 맥아피는 약쟁이이며 2012년엔 심지어 살인 혐의로 구속까지 당했다.(…)

연구소를 나오면서 초창기부터 일했던 직원 100명에게 무상으로 주식을 나누어주었다고 했지만 전부는 아니었는지 안철수는 현재 안철수연구소의 지분 37.1%를 보유 중이다. 이는 3350억원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그리고 2011년 어느 기사에는 연구소에서 일하지도 않는데 주식이 있다고 부르주아 인텔리 좌파라고 까는 무개념 댓글이 베플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직원들과 간담회에서 한 직원이 “회사에 노조가 생기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질문하자 “회사 접어야죠”라고 대답해 분위기가 얼어붙었다는 일화가 정치계 입문 후 인터넷에 소개돼 노동관 논란이 일었던 적이 있었다. 기사 이에 대해 새정연 대변인을 지냈던 금태섭 변호사는 “(저서인) <안철수의 생각>부터 여러 차례 노동 문제를 다뤘고 대선 캠프에서 노동 분야도 따로 있었다. 전혀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과거 회식 자리 비슷한 발언에 대해 당장 사실 관계를 확인할 수 없다. 이상한 전언을 가지고 이렇게 쓴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반박하였다.

위 기사의 원 소스는 물뚝심송의 블로그 게시글. 2015년 12월에 이 논란이 다시 불거졌고, 결국 안철수 의원실에서 물뚝심송과 기사를 받아쓴 미디어오늘을 상대로 법적조치를 검토중이라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물뚝심송문서 참조.

안철수가 정치인이 되면서 주식 처분 과정이 대두되었는데, 이는 소액주주들의 피해 때문이었다. 2만원 주식이 16만원이 되었기 때문. 얼핏 들으면 이해하기 상당히 난해하나, 정치인의 인식이 아무리 좋지 않더라도, 언론마사지와 집중도를 받기 때문에 어느정도 긍정적인 수치는 유지할 수 있음에도, 주식을 하는 사람들, 특히 디씨인사이드의 주식갤러리의 경우 중 안철수의 작태를 혐호하는 수준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와 관련하여 팟케스트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2.5.1. 안철수 재직 중 V3[편집]

대표적 안티 바이러스 브랜드는 V3이 있다. 컴퓨터용 안티바이러스 제작에 뛰어들게 된 계기는, PC 통신 초기이던 80년대 말에 출현한 브레인 바이러스를 수동으로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어 이것을 프로그램화하여 최초의 한국산 안티 바이러스인 ‘Vaccine’을 만들게 되면서 부터였다. 이것을 VT에 뿌렸을땐 많은 사람이 환호했다. 차차 버전을 올려가면서 미켈란젤로 바이러스 퇴치기능을 추가할때 Vaccine 3, 줄여서 V3로 명칭이 굳어졌고, 이것이 지금까지 사용되어지고 있다. V3부터는 버전 넘버를 따로 매겼는데 그 버전 넘버가 곧 V3가 잡을 수 있는 멀웨어의 갯수였다. V3 Ver. 100이라면 100개의 바이러스를 잡아낼 수 있었단 얘기. V3의 영향은 한국의 많은 이들이 컴퓨터용 안티 바이러스 프로그램을 가리켜 ‘컴퓨터용 바이러스 백신’이라고 부르고 있는 데서도 찾아볼 수 있다. 본 문서도 마찬가지.

국내에서 경쟁할 프로그램이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백신을 사업화하지 않고 있다가 윈도우 시대로 넘어와서 백신을 유료화하자, 뭇 초딩들에게 바이러스를 고치는 백신을 돈 받고 팔다니, 아저씬 나빠요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고 한다. 이때 언론들 역시 백신의 사업화를 부정적으로 보도한 바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막 까대도 실질적으로는 V3+Neo를 계속 버전업했다. 사람들이 몰라서 그렇지(…) 문제는 v3+neo는 실시간 감지 기능이 없었으며 이미 당시의 백신의 대세는 무료백신으로 DB를 확보하고 부가기능이 추가된 유료백신을 사업자 & 코어사용자용으로 판매한다는 것이었다. v3의 무료에 대한 부분은 2000년대 이후에 대해서는 시대에 상당히 뒤쳐진 부분이 크다는 관점.

2.5.2. 안철수 퇴직 후 V3[편집]

안철수가 공부를 이유로 안철수연구소를 떠난 후, 안철수연구소는 무수한 병크를 터뜨렸다. 안철수가 떠난 뒤의 안랩은 ‘무료 백신은 세계의 대세가 아니다’ 등의 헛소리를 했고, 무료 V3 역시 도스 버전만 지원하다가 국내에서도 어베스트 등의 한글화 무료백신이 나오면서 밀리고 밀린 끝에 출시했다. 무엇보다, V3의 성능 부족을 ‘한국 토착화’ 같은 소리로 무마하려고 하며 개선을 하지 않았다. 결국 지금은 윈도우용 무료 백신 V3 Lite를 배포하며 괜찮은 반응을 얻고있다. 여간 안철수연구소가 법인화 되었어도 V3을 여전히 인터넷을 통해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

사실 무료백신은 신속한 업데이트가 어렵고, 유료백신으로 전향한게 현명하기는 했다. 다만, 당시 안랩 대표가 ‘무료 백신은 세계의 대세가 아니다’라는 얘기를 한 시점의 보안업계 뉴비들의 사업모델은, 개인 사용자들에게 무료로 안티바이러스/방화벽을 뿌리고 개인 사용자들의 피드백을 통해 DB를 확충한 다음, 법인 시장을 노리는 것으로 변화하고 있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제대로 병크 터뜨린 셈.[13]

2.6. 교육인[편집]

파일:201210131433209778.jpg

안철수가 딴 학위는 의학 학사-석사-박사, EMTM, EMBA이다.

20대에 최연소 교수, 그것도 학과장이 되었다.(…) 여기에는 좀 속사정이 있는데, 안철수 본인이 임상의학보다 기초연구쪽에 관심을 두고 생리학을 전공하였으며 신설의대 증가 등으로 전국적으로 의대 교수 자리, 특히 기초의학 교수 자리가 늘어나게 되면서 이례적으로 빠르게 교수를 달았던 것이다.[14] 그리고 학과장을 맡게 된 것은 다른 교수들에 비해 젊다는 이유로 귀찮은 일이 많은 학과장을 떠맡게 된 사정도 있다.

카이스트 석좌교수 시절에는 학부 학생들은 1년만 가르치고 대학원생들을 가르쳤다. 여담이지만 학부생을 가르칠때의 수업인 <기업가적인 사고방식>은 명강의로 소문이 자자했다. 수업 자료로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케이스들을 사용했는데, 원본 뿐 아니라 학생들에게 배부할 자료들도 복사를 하지 않고 각 부에 해당하는 저작권료를 모두 자비로 냈다.

KAIST 석좌 교수로 있다가 서울대학교의 러브콜을 받고 이적,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직을 맡고 있었고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에 참가하는 출마선언을 기점으로 모든 직위에서 물러났다.

안철수는 의학박사를 딴 뒤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에서 EMTM(관리직을 위한 기술경영 석사)을 취득했다. 중간관리직~임원 정도에 있는 사람들이 주중에는 회사를 다니고 주말에는 학교를 나가서 2년만에 석사 학위를 취득하는 과정이다.#[15][16][17]

이것도 모자라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와튼비즈니스스쿨(세계 최고의 경영대학 중 하나. 펜실베이니아는 아이비리그다)에서 EMBA(관리직을 위한 경영학 석사) 학위까지 갖고있는 엄친아.

컴퓨터 회사를 창업한 이력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키보드를 보고 타이핑을 한다는 모양. 의대 교수 생활을 접고 창업을 해 안철수연구소에서 잘 나가던 CEO였지만 또 다시 접고(…) 카이스트 경영과학과의 ‘정문술 석좌교수‘에 임용됐다. 정문술 미래산업 창업주의 적극적인 추천이 있었다는 후문. 실제로 안철수의 보직 이름은 정문술 석좌교수.

2.6.1. 비판[편집]

안철수의 학력 및 경력은 본인 및 주위의 ‘언플’ 로 인해 엄청나게 부풀려졌다는 비판이 있다. 여기에 추가적으로 서술.

펜실베니아 대학에서 EMBA 과정을 이수한 것이 주말 과정이라 공부량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있다. MBA는 주로 3~7년의 경력을 갖춘 실무진 급을 데려와 1~2년 정도 풀타임으로 공부시키는 경영학 석사 과정이다. 반면, EMBA는 주로 10~15년의 경력을 갖춘 관리직을 데려와 2년 정도 주말에만 공부시키는 경영학 석사 과정이다. 즉, 둘 다 경영학 석사 과정이지만 경력, 공부량, 입학 난이도 등에는 큰 차이가 있다. 와튼 홈페이지에서는 EMBA 과정이 와튼스쿨과 교육과정이 동일하며 가르치는 교수도 같으나, 재직자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주말에 강의를 할 뿐이라고 홍보하고 있다.[18] 물론 본 캠퍼스에서 주중 내내 수업을 듣는 것과 2주에 한번 부 캠퍼스에서 수업을 듣는 게 같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와튼 EMBA 입학생의 GMAT 점수 중간값은 695점(상위 11% 정도)이고, 풀타임 MBA의 경우 730점 (상위 4% 정도)로 큰 차이가 난다.[19]

카이스트 경영과학과 교수임용도 말이 많았다. 교수 임용 자격기준 상에서는 정교수는 대졸 이후 10년 경력(연구실적+교육경력을 합쳐)을 갖추어야 한다. 그리고 교육경력이라 함은 학교의 교육경력[20]을 말하고, 연구실적이라 함은 ‘교원이 담당하는 학과목과 관련하여 대학 기타 연구기관에서 연구한 실적’ 또는 ‘산업체에서 교원이 담당하는 학과목과 관련되는 직무에 근무한 경력’을 말한다. 법령대로라면 2003년에 이미 경영 경력 8년 + 기술경영 파트타임 석사 학위를 통해 모든 자격조건을 충족시킨 셈이다.

하지만 위는 법령상의 것이고, 실제 우리 현실을 살펴보면 조교수 임용만 되어도 경쟁률이 높기 때문에 풀타임 박사 학위 소지자 위주로 채용하는 것이 관행이다. 안철수는 경영학 박사(Ph.D)학위가 없고 의학 박사 + 기술경영 파트타임 석사 + EMBA 파트타임 석사만 소지한 상태라서 이런 관행에 맞지 않았다.

서울대로 옮겼을 때도 부부가 동시에 정교수 임용 되는 일이 벌어졌는데, 이 때문에 많은 비판을 받았다. 능력만 있다면, 또는 학교 측에서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면 부부가 함께 임용되는 것 자체는 전혀 문제될 사항이 아니다. 가정을 중시하는 미국은 전용 용어(dual career)까지 있으며 유수 대학들은 우수 인재를 끌어오기 위해 이런 듀얼 커리어 지원을 장려[21]하기도 한다. 단 이때 비판받은 주된 이유는 부부 모두의 ‘연구실적이 크게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2.7. 정치인[편집]

3. 비판 및 논란[편집]

4. 알려진 품성[편집]

본인무릎팍도사에서 나와 한 말이다.

  • 고등학생 시절 집 앞에서 택시를 타고 나가게 되었는데 그의 어머니께서 존댓말을 하며 배웅하셨고, 그걸 본 택시기사가 두 사람의 관계를 파악하지 못해 “형수님이냐?”고 물었다는 일화가 있다. 안철수는 이때까지 집에서 가족들은 서로에게 존대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해 왔다는 듯. 그리고 그 덕에 반말을 잘 못해 곤혹일 정도로 존댓말이 입에 붙었다고 한다. 특히 군대에서 난감했다고 한다.
  • 군의관으로 복무했는데, 환자인 일반 병사는 그렇다치지만 지시를 내려야 할 의무병수병이라 하대를 해야한다. 결국 생각 끝에 한 말은 “~래…요?” (이것도 무릎팍도사에 나온다.)

5. 이야깃거리[편집]

  • 파일:/image/003/2016/04/15/NISI20160415_0011589824_web_99_20160415134904.jpg

    글씨체는 대략 이렇다. 둥글둥글

  • 무릎팍도사에도 출연했다. 2009년 06월 17일에 방영. 엄청난 포스로 방송분량 1시간을 거의 채웠으며 그에 따라 라디오 스타는 다음주 분량의 예고편만 방영했다. 참고로 여기서 본인 말에 따르면, 군의관 입대하러 가는 당일 새벽에 초기버전 V3 제작 완료했다고 한다. 그 덕분에 가족들에게 입대하러 간다는 말을 일절 안하고 나왔다고… 가다가 도중에 아차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김미경 교수의 인터뷰를 보면 아내가 바래다 주긴 한 듯하다. 안철수는 그냥 V3 생각만 하다가 군대 간다고 가족들에게 말하지 않고 허둥지둥 서울역으로 달려갔고 부인은 안철수가 말하지 않았어도 군대 가는 날을 알고 있어서 군대 가는 안철수를 쫒아와서 바래다 준 듯. 근데 강용석은 이거 가지고 아내가 안철수가 군대 간다고 말했다고 말하지 않았는데도 안철수의 거짓말이라며 블로그에 포스팅까지 했다.(…)
  • DOS시절에 제작된 러시아산(?) 컴퓨터 바이러스중 하나는 당시 뜨던 V3을 놀려먹기 위해서인지 메세지중에 ‘안철수 바보’라는 뜻의 메세지를 집어넣었다고 한다.(…)
  • 상당한 영화광으로 알려져있다. 소장한 DVD, 블루레이가 천여장은 되는데다가 바쁜와중에도 웬만한 개봉영화는 시간을 쪼개서라도 아내와 보러간다고 한다.
  • 하이텔의 유명 게임 동호회 중 하나였던 개오동(KETEL오락동호회)에서 위저드리7 때문에 이찬진씨와 더불어 채팅방에 자주 출몰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안철수의 아이디에는 특수문자가 들어갔다고… (하이텔 아이디가 ahn.cs였다.) 당시 하이텔에는 아이디에 특수문자를 삽입할수 없었다. 하이텔 측에서 백신을 배포해 준 보답으로 아이디에 특수문자를 넣을수 있도록 했다는 카더라 통신이 돌지만, 사실 그냥 하이텔 초창기인 케텔 시절 특수문자 아이디가 생성 가능했던 때에 가입했기 때문이다.
    • 또한 유명세로 인한 해킹(이라기 보다는 버그를 악용한 것) 사건이 KETEL시절 일어나기도 했다. 당시 KETEL/KORTEL은 버그 투성이라 해커의 온상지였다. 일례로 갈무리 기능인 PR의 버그로 인해 읽기 제한인 글들을 줄줄이 읽어내는 등… 당시 아이디들이 실제로는 저장되는 방식이 ‘ahn.cs’와 같이 공백을 두고 저장하던 식이라 문자열을 비교하는 알고리즘이 비교적 허술하게 작성되었다. 당시에는 3자리 아이디도 허용되던 시절이었다. 대표적인 버그중 하나로 아이디가 ‘a’, ‘ah’, ‘ahn’, ahn.’, ‘ahn.c’ 인 사람들은 얼마든지 안철수(ahn.cs)의 게시글을 수정할 수 있었던 것. 지금 생각하면 있을 수도 없는 일이지만 그정도로 문자열 비교 알고리즘은 쉬운게 아니기도 하다. Kit-Virus 작성자라고 자칭하는 사람이 이런 문제를 간파하고 안철수가 올린 V3의 자료 설명과 내용을 파괴하고 장난해서 물의를 빚은 사건도 있었다.
    • 또한 한번은 개오동에서 유령회원을 정리할 목적으로 회원을 모두 탈퇴시키고 12시부터 재가입을 받기로 했었는데, 12시가 되고 몇초 지나지 않아 바로 재가입 신청을 했다고 한다.
  • SNL 코리아 시즌 2의 여의도 텔레토비 코너에서 ‘안쳤어’로 패러디된다. 등장했다가 간만 보고 금방 사라지는 역할이다. 상징하는 색깔은 흰색.
  • 관련 사건 목록은 여기에 잘 정리되어 있다.
  • 11월 23일 수원대학교에 강의를 하러 왔었다. 그러나 사학비리를 언급하지 않은 것 때문에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 정치권에서의 행보로 인해 주갤, 일베 등의 비판적인 커뮤니티에서는 ‘간잽이 간철수’라고 불릴 정도로 간만 보고 눈치만 보는 애매모호하고 우유부단한 캐릭터가 확립되었다. 주로 안철수 관련으로 나오는 드립은 ~할 수도 있고 ~ 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로 대표되는 슈뢰딩거의 철수 드립이나 V3 관련 컴퓨터 소재
  • 2016년 6월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때 중국의 등소평을 롤모델로하면서 연설을 했었다.#
  • 반기문의 대선 불출마를 예언했다. 심지어 설 이후라는 시점까지 맞췄다. 그에 이어 황교안의 대선 불출마 까지 예언하면서 안스트라다무스, 안파고라는 별명이 생겼다.문재인과 자신의 양자대결을 예언했는데 과연?

6. 저서[편집]

7. 선거 이력[편집]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12 제18대 대통령 선거 무소속 최종 미등록 예비 후보 [22]
2013 2013년 상반기 재보궐선거 (서울 노원 병)[23] 무소속 42,581 (60.46%) 당선 (1위) [24]
201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노원 병) 국민의당 53,930 (52.33%) 당선 (1위)

8. 관련 문서[편집]

[1] 안랩 영문판 홈페이지에는 안철수를 자사의 창립자로서 Dr. Charles Ahn으로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안철수가 정치에 입문한 후 그를 찰스라고 부르는 것은 안티들이 희화화할 때인 경우가 많아서, 꽤 많은 지지자들이 그를 찰스로 부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게다가 어차피 외신에서도 거의 다 Ahn Cheol-soo로 표기하고 있으니 이제는 굳이 찰스를 쓸 일이 별로 없을 듯하다.[2] 당시 부친이 밀양에서 군의관으로 활동하고 있기에 밀양에서 출생했다고 한다. 그래도 어린 시절부터 부산에서 자랐으니 사실상 부산 출신이라 해도 큰 무리는 없다.[3] # 외가는 불교이고, 처가는 천주교이나 자신은 종교가 없다고 밝힘.[4] 가톨릭 학생회 가입은 친구 따라서 봉사목적으로 가입, 배우자도 여기서 만났다고 한다. 출처: <안철수의 서재> #.[5] 지금으로 치면 하위권이라고 생각 할 수도 있겠으나 당시엔 한반에 50~60명씩 꾸겨담는 일이 부지기수여서 30등정도면 딱 중간정도의 성적[6] 해병2사단이 육군17사단의 전방을 지키는 위수부대라서 그렇다.[7] 그래서 함정근무자의 경우 30분 내 부대 복귀 가능한 거리에 대기해야 한다. 참수리급 고속정은 아예 5분대기라 반쯤 영내생활이나 다름없다. 참수리 BOQ도 부대 내에 있다.[8] 이전 판에는 1989년 12월 7일에 최초의 백신이 개발되었다고 적혀있었으나 뒤에 링크된 V3 소스코드를 보면 배포일이 88년 6월이다…[9] 돈을 빌려와서 회사를 꾸려가는 경영형태. 어느 위키러가 부채가 0이라고 표현했지만. 그렇지 않다. 전자공시시스템가서 확인해보시길. 다만 그렇다해도 다른 기업과 비교하면 거의 없는 수준. 15년 12월 기준 자산 1900억, 부채 330억 원. 웬만한 대기업들도 자기자본 대비 부채가 100%가 넘어가는걸 생각하면 정말 적은 것 맞다. 은행에서 돈을 빌리거나 회사채를 발행하여 자금을 조달하지 않아도 회계상 부채는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직원들 퇴직금만 해도 실제로 지급되기 전까지 부채로 쌓여있다.[10] 입사지원 자격요건에 관한 내용을 클릭하면 된다.[11] 무릎팍도사 안철수편 방영분 중[12] 1000만불에 팔라고 한 것이 아니라 반반씩 투자한 회사를 세우자고 했으니 투자비를 못 땡겨와 하지 못했다는 설도 있다.[13] 그런데 안철수연구소 역사를 생각해보면 굉장히 모순인게 V3 초기형, V3 Neo는 엄밀히 말하면 무료백신이었다. 굉장히 시대를 앞서나간 것.[14] 여담으로 90년대에 나온 생리학 교과서를 보면 교수 안철수의 이름을 찾아볼 수 있다.[15] 이를 컴퓨터과학 석사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는데 전혀 관계없다. 제조업이나 IT산업 쪽 회사를 경영하는 방법에 대한 석사학위다.[16] 이를 우리나라의 최고위과정과 비슷하게 오해하는 경우도 있는데, 전혀 다르다. 그쪽은 학위가 나오지 않는 친목단체이고 돈만 내면 들어갈 수 있다. 반면 이쪽은 학위가 나오는 석사과정이고 GMAT나 GRE 등 미국 대학원 입학시험 성적 제출이 필수적이다.[17] 이를 정규 학술석사(M.S.)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는데, EMTM은 논문을 쓰고 연구를 하는 과정은 아니다.[18] The Wharton executive MBA offers an undiluted MBA degree — its innovative curriculum and top faculty are the same as in Wharton’s renowned full-time MBA program. This two-year, weekend residential program, offered in Philadelphia and San Francisco, attracts students from throughout the U.S. and around the world.[19] 참고로, 서울대 풀타임 MBA의 경우 GMAT 제출은 의무가 아니며, 제출한 학생들의 평균은 Global과정 660점 (상위 20% 정도) SNU과정 610점 정도다.[20] 교육경력은 ‘관련 분야’에 대한 제약이 붙어있지 않다. 그리고 파트타임인지 풀타임인지에 따른 제한도 붙어있지 않다. 즉, 기술경영 파트타임 석사로도 법적으로 경영대 교수가 되는 데 필요한 교육경력 2년 충족 가능.[21] 뛰어난 업적을 세우고 있는 부부 연구자에게 동시 오퍼와 복지 패키지로 제시하거나, 아니면 남편/아내가 먼저 채용이 되어 있는 상태에서 다른 쪽을 우대 채용한다.[22] 문재인을 지지하며 사퇴했다.[23] 전임자 노회찬 피선거권 상실[24]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 창당, 2015.12 탈당, 2016년 국민의당 창당

문재인

문 재인

이 글은 나무위키에서 퍼온 글입니다.

· 법조인/목록, 정치인/목록, 가톨릭/인물, 친문, 친노

이름 문재인 (文在寅, Moon Jae-in)
출생일 1953년 1월 24일 (64세)
출생지 대한민국 경상남도 거제시 거제면
본관 남평 문씨
본적 함경남도 흥남시
학력 경희대학교 법학 학사
정당 더불어민주당
종교 천주교 (세례명: 디모테오)
부모 아버지 문용형, 어머니 강한옥[1]
가족 배우자 김정숙, 슬하 1남 1녀
형제자매 2남 3녀 중 장남[2]
신체 173cm, 67kg, B형
현직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
약력 법무법인 부산 대표변호사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
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수석비서관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3]
제29대 대통령비서실장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
제19대 국회의원
제18대 대통령 선거 민주통합당 후보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더불어민주당 대표
별명 달님[4], 명왕[5]
링크 트위터, 페이스북
팟캐스트
공식 홈페이지 1
공식 홈페이지 2
역대 대통령비서실장
참여정부 이명박 정부
28대 → 29대 → 초대 대통령실장
이병완 → 문재인 → 류우익

새정치민주연합 / 더불어민주당의 당대표
비상대책위원장
문희상 → 2대
문재인 →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김종인

  1. 개요2. 비판과 논란3. 생애
    3.1. 초년 시절3.2. 인권 변호사 시절3.3. 참여정부 시절3.4. 제19대 국회의원3.5. 제18대 대통령 선거3.6. 2015년3.7. 2016년3.8. 2017년
  2. 트리비아
    4.1. 노무현과의 관계4.2. 안철수와의 관계4.3. 박원순과의 관계4.4. 기타4.5. 금괴 루머
    5. 친문6. 약력7. 가족관계8. 저서9. 선거 이력10.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법조인이자 정치인.

노무현 대통령이 부산에서 노동 및 인권 변호사를 하던 시절 그와 함께 왕성히 활동했고, 노무현이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뒤로는 줄곧 뒤에서 노무현을 도와 참여정부 탄생에 일조했다. 노무현이 청와대에 입성한 뒤로는 청와대 민정수석 두 번과 시민사회수석[6]을 거쳐서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냈다.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뒤에는 노무현재단의 이사장 직을 맡아 고인의 기념 사업을 이끌며 정치 세계와는 거리를 두고 있다가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때 민주통합당 후보로 부산 사상구에서 55%의 득표율을 얻어 당선돼 본격적으로 정치인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2012년 12월에 열린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안철수 후보가 사퇴함으로써 야권의 단일 후보로 나섰지만 48%의 득표율에 그쳐 51.6%의 득표율을 기록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에게 3.6%의 차이로 패해 대권을 내주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대선 역사상 두 번째로 많은 표를 받은 후보라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7]

대선에서 패배한 뒤, 뚜렷한 활동을 하지 않다가 2015년 2월 새정치민주연합의 제2대 당대표 선거에 당선되었고 새정치민주연합의 수장으로서 당을 이끌었다. 그러다가 더불어민주당으로 당명이 바뀌면서 더불어민주당의 초대 당대표가 된다.

김종인 비대위의 원활한 활동을 위해 최고위원들과 함께 2선으로 물러나 2016년 1월 27일 기준으론 평의원 신분으로 돌아왔으며, # 2016년 4.13 총선이 끝난 뒤로는 중앙 정치 무대와 거리를 두고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대선 행보로 풀이되는 일정들을 소화하고 있다.

당대표직에서 물러나면서 더불어민주당 의사 결정 구조에 영향력을 끼칠 권한이 공식적으로는 없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권 일각에서는 그를 더불어민주당의 새로운 주류 세력인 친문계의 리더이자[8][9], 더불어민주당의 최대주주로서 여전히 최고 실력자의 위치에 있다고 보고 있다.

2. 비판과 논란[편집]
문재인/비판과 논란 문서 참조.

3. 생애[편집]

출처
3.1. 초년 시절[편집]
1953년 1월 24일 경상남도 거제시에서 아버지 문용형 씨와 어머니 강한옥 여사 사이에서 태어났다. 문재인의 아버지 문용형 씨는 대대로 이북 함경남도 흥남 인근 남평 문씨 집성촌에서 살았고 당시 명문이던 함흥농고를 나와 북한 치하에서 흥남시청 농업계장, 과장을 지냈으나 공산당 입당을 거부한 탓에 북한 공산당에게 시달리다가 6.25 전쟁 당시 흥남 철수 때 미군의 메르디스 빅토리호를 타고 월남하였고, 문재인을 피난 중에 경상남도 거제시에서 낳았다.

그러나 태어난 지 7개월도 안 되어 휴전 협정으로 휴전선이 그어지면서 길이 막혀 부모님이 살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어졌기 때문에, 부산 영도구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그가 태어난 곳은 경상남도 거제시지만 연고지는 부산이라고 할 수 있다.

문재인이 태어났을 때 문용형 씨는 북한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공산당에게 너무도 시달렸기 때문에 공무원 생활은 절대 하지 않겠다면서 거제도 포로 수용소에서 노무자로 일했고 강한옥 여사는 거리에 나가 계란 행상으로 가계를 꾸렸다. 그러다가 문용형 씨는 양말 떼다 판매상에게 공급하는 사업을 벌렸으나 빚만 졌다고 한다. 그래서 구호물자로 얻은 옷가지를 파는 좌판이나 연탄배달 소매상 등을 하던 강한옥 여사가 실질적인 가장 역할을 하는 가난한 시기가 이어졌다. 문재인은 훗날 집에 자전거를 살 만한 형편이 아니어서 지금도 자전거를 타지 못한다고 한다고 밝혔다. 그래서 2012년 SBS 힐링캠프에 출연했을 때 제작진이 문재인에게 자전거를 선물로 주었다. 그런데 보조바퀴 달린 걸로 주었다는 게 함정(…)

초등학생 시절 학교에 매달 내야 하는 ‘월사금'[10]을 못내서 담임이 집에 가서 받아 오라고 하면 그냥 같이 못낸 친구들과 바닷가 가서 놀다가 학교 마칠 때 쯤 교실로 되돌아 갔다고 한다. 동네 성당에서 나눠주는 전지분유를 배급받은 고마움에 어머니가 먼저 천주교 신자가 되었고 문재인 본인도 초등학교 3학년 때 부산 영도구에 있는 성당에서 영세를 받았다.

1965년 부산 남항국민학교를 졸업했고, 당시 명문이었던 경남중학교에 입학했다. 근데 경남중 동문 중에 새누리당의 전 대표인 김무성 의원이 있다는 게 또 함정[11]. 1968년 경남중학교를 졸업한 후, 그 당시 PK 지역 최고의 명문고로 꼽혔던 경남고등학교에 수석으로 입학하였다. 중학교 때 학교 도서관 가는 것을 좋아해서 닥치는 대로 책을 읽어 시간이 날 때마다 학교 도서관에 가거나 책을 대출 받아 읽는 일을 고등학교 마칠 때까지 계속 했다고 한다.

고교 시절 초기에는 학업에 두각을 나타냈지만, 말기에는 극도로 가난했던 자신의 처지에 대한 비관과 낙담, 사회 계층 차이에 대한 불만 등으로 인하여 술과 담배에 손을 대는 등 방황을 하다가 서울대 입시에 실패하고 말았다. 고등학생 시절에는 주먹도 좀 썼다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1971년 종로학원 진입 시험에서 1등을 해 학원비를 면제받고 재수를 시작했지만, 재수 후에도 서울대에 낙방, 후기로 1972년, 경희대학교 법학과에 문과 수석으로 4년장학생으로 입학했다. 경희대를 선택한 건 설립자 조영식 박사가 문재인의 아버지처럼 실향민이라는 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경희대학교 4학년 총학생회 총무부장으로서[12] 유신 독재에 반대하는 집회를 주도했다가 1975년 4월 11일 집회 때 구속되어 징역 8개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 받고 풀려났지만[13] 대학에서 제적당했다.[14]

출소 이후에는 강제로 징집되어 1975년 8월 육군에 입대하였고, 대한민국 39향토보병사단 훈련소를 거쳐 특수전사령부 제1공수특전여단 제3특전대대 대대본부 작전과에서 복무하였다. 이때 사령관이 故 정병주 장군[15], 여단장이 전두환, 대대장이 장세동이었는데 훗날 일어나는 12.12 군사반란에서 이들의 운명이 어떻게 되는지, 또 이들 밑에서 일반 사병으로 복무했던 문재인의 미래를 돌이켜 보면 참 역사란 드라마틱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항간에서는 문재인이 대대본부 작전과에서 행정병으로 복무한 거니까 꿀을 빤 거 아니냐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그 당시의 특수전사령부에선 장교, 부사관 뿐만 아니라 일반 사병들 중 특전대대에 배치된 일부 인원도 똑같이 전투 훈련을 받았다. 따라서 문재인도 그 당시 특전사에서 주특기가 폭파였고, 수중침투훈련을 받았다고 한다. 전투 지원 및 행정 업무만 하는 지금의 특전병도 특수전 훈련 빼고 다른 훈련 (공수 훈련 등) 은 다 받고 있다.

군 복무 중에는 당시 특전사 사령관이었던 故 정병주 장군과 여단장이었던 전두환(…)으로부터 두 차례의 최우수 특전사 표창을 받기도 했다.

당시 문재인과 같은 부대에서 교육장교로 있었던 노창남 예비역 대령의 회고에 따르면, 문재인이 이등병이었던 시절 폭파 과정 훈련에서 최우수자로 선정됐는데 특전사는 장교, 부사관 등 직업 군인 위주로 돌아가기 때문에 당연히 이들이 성적 우수자로 선발되는 게 일반적이었다고 한다. 따라서 일반 사병이, 그것도 가장 낮은 계급의 이등병이 성적 최우수자로 상을 받는 일은 전례가 없었던 일이라고.# 이렇게 군 생활을 잘 해서 그런지 전역할 때 간부들이 말뚝박으라고 괴롭혔다는 후문이 전해진다.

항간에 떠도는 소문으론 1976년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보복조에도 소속돼 있었다고 하는데, 본인 말로는 직접 투입되진 않았고, 전면전 발발을 대비해 비상 대기중이었다고 한다. 미루나무 작전에는 ‘현장팀’과 ‘작전상황팀’이 있었고 문재인은 작전상황팀 소속이었다고 한다.# 판문점의 보복 작전 현장에 1차로 직접 투입된 건 특전사의 ‘장교’와 ‘부사관’들이었다고.[16]

이러한 문재인 전 대표의 특전사 복무 경력과 일부 정치인들의 병역 비리 의혹이 대비되면서, 군 복무가 아킬레스건이 아니라 되려 메리트로 작용하는 몇 안 되는 정치인이 됐다. 특히 2016년 10월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 회고록 파문이 터지자 일부 보수 세력들은 문재인 전 대표를 향해 색깔론 공세를 펼쳤는데, 문 전 대표는 이를 두고 “군대도 안 갔다온 사람들이 걸핏하면 종북 타령이냐” 라며 국가 안보를 강조하고 또 강조하는 보수 진영에서도 정작 군 복무를 면제받은 사람들이 제법 많다는 사실을 꼬집기도 했다.#

당시 그가 특전사 예하 제3대대에 배치받았을 때 ‘시위하다 온 애’, ‘교도소에 있다 온 놈’이라는 전력 때문에 대대 예하의 각 부서에선 그를 기피하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한다.[17] 그러자 대대 인사과에서는 이러한 사정을 몰랐던 작전과 교육계한테 “똑똑한 놈이 새로 왔다”며 설득하여, 대대 본부 작전과에 문재인을 배치시켰다. 배치 받은 후에야 다른 장교들에게 문재인 신병이 ‘시위하다 온 애’라는 사실을 들은 교육장교 노창남 당시 중위는 다음날 인사과장에게 항의했지만, 이미 버스는 떠난 상태였다고(…)

문재인이 속해있던 제3특전대대 본부 작전과에서 같이 근무했던 노창남 예비역 대령은 2012년 18대 대선 당시에 문재인과 같이 군 복무했던 사람들을 비롯해 문재인을 지지하는 특전사 출신 700여 명을 모아 ‘문재인과 특전사 전우들의 모임’을 결성하고 문재인 후보 지지 선언을 했다.# 그리고 노 대령은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의 새 당대표를 뽑는 2.8 전당대회가 열렸을 때에도 문재인 지지를 호소하는 글을 새정치민주연합 대의원들에게 보내기도 했다.#

1978년 전역 후 고향에 돌아와서 진로 문제로 방황하다가 문용형 씨가 59세의 나이로 심장마비로 갑자기 돌아가시자 사법시험에 매달리기로 하고 바로 전라남도 해남에 있는 대흥사 암자로 가서 공부에 매진, 1979년 사법시험에 두 번째로 1차 합격하였다.[18][19] 단, 준비 소홀로 2차는 다음 해로 목표를 정했다. 그러나 그때 부마항쟁이 시작돼 다음해 80년에는 학교와 복학 논의가 시작되어 뜻하지 않게 복학생 대표가 되었다.

1980년 복학하면서 4월 학내 시위 와중에 사법시험 2차 시험을 치렀을 무렵, 전두환이 이끄는 신군부 세력은 1980년 5월 17일 24시 비상 계엄을 전국으로 확대 발표하고 민주화 운동 전력이 있는 대학생 등 반정부 인사를 ‘계엄포고령’을 위반했다면서 마구잡이로 구속했다. 문재인 또한 5월 17일 저녁 강화도 예비 처가에 다녀오는 길에 잡혀 또 구속됐다. 이런 사유로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실제로 국가유공자 자격을 받을 수도 있었지만 받지 않았다고 한다.#

구속된 지 한 달이 지나는 중 80년 제22회 사법시험에 2차 합격했다.[20] 보통은 1차 합격을 하면 2차 시험을 위해 총력을 다해 매달리는데 문재인은 민주화 운동을 하면서 사법시험 공부까지 병행해서 합격한 것이다. 2차 합격 소식을 당시 애인이었던 김정숙 여사가 유치장에 면회를 와 알려줬다고 한다. 그리고 대학 관계자들이 면회를 와서 합격 소식을 전하자 구치소 직원들의 태도가 순식간에 바뀌었다고(…) 계속 반말을 하던 사람들이, 어느날 아침에 갑자기 문재인을 보고 영감님(검사에게 쓰던 호칭)이라고 부르며 유치장 밖으로는 못 나가니 학교 관계자나 면회객을 유치장 안에 들어가게 해서 축하주를 마시게도 해주었다.

그해 경희대에서 시험에 합격한 사람이 2명이라[21] 다급해진 대학 측은 총력을 기울여 구명 노력을 펼쳐 며칠 후 석방되었다.[22] 이후 3차 면접 직전에 안기부에서 그를 호텔로 불러 “지금도 생각이 그때와 같은가?” 라고 사실상의 전향 의사를 타진했지만[23] 문재인은 합격 취소를 각오하고 “그때 나의 행동이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훗날 문재인은 썰전에서 이 3차 면접 때 안기부로부터 전향 요구를 받았을 때 솔직히 마음이 흔들렸지만 그렇다고 그 손을 덥석 잡아버리자니 너무도 굴욕적으로 느껴져서 거부한 것이라고 회고했다. 그리고 호텔 밖으로 나와서 후회했다고 사실 사법시험 합격자가 귀한 경희대의 구명 노력과 당시 전두환 정권의 일시적인 유화책 실시라는 행운이 겹쳐 불합격이라는 불행은 면했지만, 소신을 지키려고 몇 년 간의 공부를 도로아미타불로 만들 수 있었던 셈인데 후회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도 인간적으로 이해가 갈 만한 부분이 아닐런지. 다행히 그해에는 3차 면접에서 아무도 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그 다음해부터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예외없이 3차에서 탈락했다고 한다.[24]
3.2. 인권 변호사 시절[편집]
사법연수원 12기 출신으로, 조영래 변호사, 박원순 서울시장, 고승덕 변호사와 사법연수원 동기다.[25] 결혼을 하고 아버지가 된 것도 이 시절이었다고 한다. 성적은 수석이었지만, 시위 전력 때문에 차석 졸업 법무부장관상을 받았고 집시법 위반 전력이 있는 이유로 판사로 임용되지도 못했다.[26] 판사 임용이 좌절되고 거대 로펌의 제의도 있었지만[27] 문재인은 어머니가 계신 부산으로 낙향했다.

이때 연수원 동기인 박정규가 노무현 변호사를 소개 해주었고[28] 의기투합한 둘은 ‘변호사 노무현 문재인 합동법률사무소’를 열었다.[29] 이후 노무현과 더불어 부산의 대표적인 재야 인권변호사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당시 노무현 문재인 합동법률사무소의 명함.

처음부터 인권변호사의 길을 걸으려고 한 건 아니었다고 한다. 사무소로 찾아오는 사람들을 마다하지 않고 만나다 보니 차츰 부울경 지역에서 대표적인 노동 및 인권변호사가 되어 있었던 것이라고. 그리고 1985년 ‘부산민주시민협의회'(약칭 부민협)이 설립되면서 부산 민주화 운동의 구심체가 마련되었고 노무현 변호사와 문재인 변호사는 33인의 대표 발기인으로 들어갔고, 부민협의 상임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때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약칭 국본)가 결성되었는데 부산 국본의 상임집행위원장이 노무현 변호사였고 상임집행위원이 문재인이었다. 이 둘은 당시 박정희가 만들고 전두환이 계승한 통일주체국민회의 하의 대통령 간선제를 국민 투표에 의하여 대통령을 뽑는 직선제로 바꾸기 위한 민주화 운동을 했다.

6월 항쟁을 통해 민주화가 이루어진 뒤 1988년 13대 총선을 앞두고 김영삼 당시 통일민주당 총재에게 노무현과 함께 국회의원 공천 제안을 받게 되었다. 노무현은 이 제안을 받아들여 통일민주당 후보로 부산 동구에서 당선, 13대 국회의원이 되어 정계에 입문하였지만, 문재인은 거절하였다고 한다. 그렇게 재야에 남은 문재인은 꾸준히 젊은 변호사들을 영입하여 법률사무소 이름을 ‘법무법인 부산’으로 바꾸고 대표 변호사를 지냈다.

최동원 선수의 부탁으로 선수협 고문변호사로 활약하기도 했다. 이 이야기는 2016년 부산 촛불집회에서 본인이 다시 언급하기도. 문재인의 야구 사랑에 대해서 쓴 기사. 한겨레신문의 부산 지사 설립을 위해 변호사 신용 대출로 빌린 2억을 쾌척해 주었으며, 한겨레신분의 창간위원과 부산 지사장을 맡기도 했다. 이 돈은 지금까지도 받지 않고 있다.

1990년 부산 엄궁동 2인조 살인사건의 변호를 맡은 적이 있으며, 2016년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해당 사건을 다룰 때 출연해 인터뷰를 하였다. 그는 “사건의 여러 정황상 용의자들이 무죄라고 확신했지만[30], 누명을 벗겨주는 데 실패했다”며 본인의 35년 변호사 인생에서 가장 안타깝고 한이 남은 사건이라고 회고했다. 참고로 이 시기는 노태우 정권이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해 많은 범죄가 일소되었지만, 그만큼 경찰, 검찰 등 우리나라 사정 기관들이 실적 올리기에 눈이 돌아가 있던 시기라 애꿎은 사람들이 사소한 트집 하나 때문에 범죄자로 몰려 수없이 체포되었고, 고문 수사 및 진술 강요 역시 만연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1996년에는 페스카마호 선상 살인 사건의 주범들을 변호했었다. 2012년 18대 대선 당시 이것으로 공격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문재인 후보는 본인이 이 사건을 담당했던 것을 흑역사로 여기거나 변명하지 않았다. 사건 항목에 서술된 주석의 내용을 빌리자면, 변호사 윤리 규칙 제19조 제1항엔 “변호사는 의뢰인이나 사건의 내용이 사회 일반으로부터 비난을 받는다는 이유만으로 수임을 거절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규정이 있다고 한다. 즉, 아무리 흉악한 범죄자라 하더라도 형사 절차에서 최소한의 절차적 기본권은 보장받아야 하는 것이 법치주의의 정신이며, 이를 조력하는 것은 변호사의 당연한 사명이라는 것이다. 특히 인권 변호사라면 더더욱 그렇다. 애초에 이런 사건의 변호는 흔히 생각하듯 피고인의 무죄를 주장하는 게 아니라 법에 따라 적절한 선에서 처벌을 받도록 조율하는 것이라 논란거리가 될 만한 일이 아니라는 반론이 존재한다.

이후 부산에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부산 지부와 경남 지부장을 역임하며 꾸준히 시민사회 활동을 하였다.

더불어민주당의 유력한 대선 주자로 떠오른 2016년에는 대선 준비를 위한 비용(사무실 임대료 등등)을 모으기 위해 ‘법무법인 부산’의 지분 22.56%로 처분(8,370만 원) 하였다고 한다.
3.3. 참여정부 시절[편집]
2003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을 지냈는데[31] 녹내장과 고혈압 등 건강 악화로 1년 만에 청와대를 떠났다.[32] 결국 민정수석비서관을 그만두고 네팔에서 트레킹을 하던 중 연락이 두절된 상황에서 영자 신문[33]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소식을 듣고 즉시 귀국하여 변호인단을 꾸렸으며, 당시 법사위원장 탄핵 정국이 끝나고 노 대통령이 대통령 업무에 복귀한 직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비서관으로 임명되었고, 다시 민정수석을 거치면서 왕수석 으로 불렸고, 청와대 비서실장[34]으로 노무현 대통령 임기 말까지 청와대에서 근무하였다.

청와대에서 일하던 시기에는 부정 청탁을 받지 않기 위해 친구를 만나지 않았고 아내에게도 백화점 출입을 금했다고 한다. 또한 고위공직자 부인들 사이의 교류에도 신중에 신중을 기하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고. 그것 뿐만 아니라 아예 동창회에 얼굴을 비추지도 않았고, 고등학교 동창인 고위 공직자가 문재인의 방에 들렀다가 얼굴도 못 본 채 쫓겨난 적도 있으며, 또한 청와대 출입기자단과 단 한 차례의 식사나 환담 자리도 갖지 않았다고 한다. SBS 힐링캠프에 출연했을 때에는 아내 김정숙 씨가 아파트를 마련하기 위해 주택청약저축을 들었는데, 그 사실을 안 문재인 당시 변호사가 주택청약저축이란 집이 없는 사람들을 위한 것인데 우리 가족은 집이 있으니 해당되지 않는다며 해약하라고 했다는 일화가 소개되었다.

2006년 부산 지역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도 부산 출신인데 부산 시민들이 왜 (참여정부를) 부산 정권으로 안 받아들이는지 이해가 안 된다. 한 지역에서 한 정당이 지방선거를 독점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열린우리당과 새천년민주당의 통합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대통령의 의지”라고 한 발언에 대해 한나라당 대변인은 지역감정 조장 발언이라면서 선거법 위반 여부를 조사해야 된다고 주장했고, 새천년민주당 대변인은 노무현 정부가 국민과 호남인을 대상으로 사기극을 펼치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민정수석으로 일하던 시절, 당시 이해찬 국무총리가 골프로 인해 구설수에 휘말리자 어떻게 조치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하던 노무현 대통령에게 해임하라고 촉구하기도 했으며, 청와대 직원들에게는 늘 존댓말을 썼다고 한다.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기보다 다양한 의견을 듣고 상황을 명확하게 정리하는 업무 스타일을 보였다고 한다.

정봉주 전 민주당 의원이 소개한 일화에 따르면, 사학법 문제로 교육위 의원, 교육부 장관, 청와대 교육수석이 청와대에 모여 ‘당청 회의’를 열었는데 교육부 장관이 자신의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사표를 내겠다며 강수를 두자 당시 회의의 일원이었던 문재인이 회의 내내 가만히 듣고 있다가 “그럼 관두시죠”라며 일침을 가했다고 한다. 국가 정책을 조율하는 데 자신의 자리를 압박 수단으로 사용할 거라면 관두라는 뜻이었다고.

문재인 전 대표와 절친한 관계로 알려진 노영민 전 의원은 충청북도의 지역 언론인 ‘충북인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참여정부 시절 전체 국정 현안 중의 95%는 문재인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 선에서 처리됐다고 주장했다. 노 전 의원의 발언에 따르면 정부 부처끼리 의견 조율이 끝내 안 돼 노무현 대통령에게까지 올라간 국정 현안은 5% 정도도 안 되었고 나머지 95%는 모두 문재인 비서실장 선에서 매듭이 지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문재인 전 대표가 차기 대권을 잡는다면 국정 현안을 파악하기 위해 불필요한 시간 낭비를 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3.4. 제19대 국회의원[편집]
2008년 참여정부를 마치고 경남 양산으로 들어가 칩거했으나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면서 다시 정치 일선으로 돌아왔다.

2010년~2011년까지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역임해오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3당 합당 이후 보수 정당이 항상 강세를 보여왔던 부산광역시의 사상구에 민주통합당 후보로 출마해 55%의 득표율을 얻어 새누리당의 손수조 후보(43.76%)를 제치고 당선되었다. 3당 합당 이후 사상구에서 당선된 첫 번째 민주당 후보다.

2014년 여름 즈음에 부산에 수해가 발생했을 때 자신의 지역구인 부산 사상구를 찾아오지 않았다고 보수 진영이 비판한 적이 있다. 문재인 당시 의원은 이때 ‘유민 아빠’ 김영오 씨의 단식 투쟁을 말리기 위해 본인도 단식 중이었는데, 이것을 두고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는 중요하고 자기 지역구는 안 중요하냐는 소리가 있었던 모양이다. 허나 이에 대해서는, 당시 사상구는 다른 지역에 비해 피해 규모가 미미한 편이었는데[35], 이는 사상구에서 하천 정비 사업 등 수해 방지 대책을 잘 세워놓은 덕분이었으며[36] 문재인 의원은 사상구에서 진행 중인 사업의 중요성을 일일이 설명하고 예산을 삭감 없이 잘 지켜내어 힘을 보탰다는 반론이 있다.

좀 더 설명하자면, 사상구 바로 옆의 북구에서는 문자 그대로 수해가 할퀴고 간 피해를 입었으나, 사상구의 경우 백양산 운수천(계곡) 등산로 등이 일부 유실된 외에 지역 주민들의 생활 터전에서의 피해가 거의 없었다. 수해 이후에도 예산을 확보하고 추가적으로 우수관거를 정비하는 사업을 벌이고 교통개선사업 등을 함으로써 사상구청(새누리당 소속 구청장)과 사상구 국회의원(민주당 소속) 모두 수해로 인한 피해도 없고 사후 대처, 지역 현안 등을 잘 챙겼다는 평가를 들었다.
3.5. 제18대 대통령 선거[편집]
· 참조문서 : 제18대 대통령 선거

제18대 대통령 선거 후보자
기호 이름 기호 이름 기호 이름
1 박근혜 4 박종선 7 김순자
2 문재인 5 김소연
3 이정희 6 강지원
“사람이 먼저다”
“사람이 먼저인 나라”
“새 시대를 여는 첫 대통령”

대선 당시 문재인 캠프의 슬로건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37]
이것을 국정 운영의 원칙으로 바로 세우겠습니다.”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후 수락 연설 中

2012년 6월 17일 서대문 역사공원에서 제 18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를 선언했다.

같은 해 9월 16일, 전국 13개 시도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13연승 전승을 거두고 대선 후보 경선에서 56%의 득표율을 얻어 민주통합당의 대선 후보로 선출되었다. 당시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경선 과정은 이 문서에서 다루고 있으니,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를 참고할 것.

대선 후보 선출 이후, 용광로 선대위를 구성해 계파를 초월한 선거 캠프를 꾸릴 것을 천명했다. 캠프 명칭은 <담쟁이 캠프>. 도종환 시인의 시 <담쟁이>에서 따온 것이다. 당내 경선에서 패배한 다른 후보들과 당원, 대의원을 포괄해, 시민 사회와도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캠프를 꾸린 셈.[38] 경선에서 패배한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는 자신의 선거 캐치프레이즈 <저녁이 있는 삶>을 문재인에게 양보하기도 했다.[39] 하지만 선거에 쓰이지는 않았다.

대선 후보 정책으로 ‘순환 출자 금지’ 및 ‘출차총액제한제 재도입’, ‘소상공인 특별법 제정’ 등의 재벌 개혁, 경제민주화를 골자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 ‘대검 중수부 폐지’ 등의 검찰 개혁, ‘노인 장기 요양, 사회서비스 제도 충당’, ‘보편적 반값등록금’, ‘소득과 무관한 보편 의료비지원’ 등의 복지 정책을 내세웠다. 또한 애묘인답게 정책공약집에는 심지어 반려 동물 권리를 위한 법안까지 있었다.

무소속으로 출마한 안철수와 함께 야권 후보 단일화를 놓고 지난한 협상을 벌였다. 혹자에게는 1987년의 악몽이 재현되는 것 아니냐며 불안감을 조성하다가, 공개 TV 토론회 이후 2012년 11월 23일, 안철수가 예비 후보직에서 물러남으로 제18대 대통령 선거의 민주진영 단일후보로 출마했다.[40]

박근혜, 이정희와 세 번의 대선 후보 TV 토론회를 벌였다. 1, 2회의 토론회에서는 강력한 데미지 딜러의 폭딜을 관전만 하며 존재감이 없다가[41], 박근혜 후보 떨어뜨리기 위해 나온 그 사람이 후보를 사퇴한 후에 벌어진 3차 토론회에서는 박근혜 후보와 1:1 토론을 벌였다. 이때 그 유명한 그러니까 제가 대통령 하겠다는 거 아니겠어요가 나왔다.

대통령 선거에서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에게 패해 2위로 낙선했다. 선거에는 패했지만,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의 후보들 중 전 정당을 통틀어 두 번째로 많은 14,692,632표(48.07%)를 득표했다.

작곡가 김형석이 캠페인 송사람이 웃는다로 참여하기도 했다. 당시 문 후보의 정책 공약 ‘다섯개의 문, 단 하나의 문’에 감동 받아서 작곡했다고 알려져 있다. 대선 캠페인 송으로는 보기 힘든 고퀄을 자랑하나, 그닥 많이 알려지지도 않았고, 떠들썩한 유세차량에서 시끄럽게 나오는 캠페인 송에 비해 임팩트는 약했던 편. 이후 김형석은 2015년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했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을 공개지지했던 신해철이 자신의 대표곡인 <그대에게>를 문재인 캠프에 캠페인 송으로 편곡까지 해서 음원을 캠프에 제공했다. 부제는 <그대에게 : Reboot The Nation (ver.1.0)>.
3.6. 2015년[편집]
문재인/2015년 참고.
3.7. 2016년[편집]
문재인/2016년 참고.
3.8. 2017년[편집]
문재인/2017년 참고.
4. 트리비아[편집]
4.1. 노무현과의 관계[편집]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대통령 퇴임 이후 노무현 대통령 서거 후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다”
– 노무현 전 대통령

金蘭之交
잘 나갔을 때에도, 그리고 무너졌을 때에도 언제나 옆을 지켜줬던 영원한 친구.

노무현 전 대통령과는 인생의 동반자라고 해도 될 만큼 긴 시간을 동지로서 함께했다. ‘법무법인 부산’에서의 변호사,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대선 캠프의 부산 지역 선거대책본부장, 참여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는 청와대 민정수석, 비서실장을 역임했으며,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가 일어났을 땐 변호인단을 꾸려 위기 돌파에 기여했다.

노 전 대통령이 퇴임한 뒤 검찰로부터 표적 수사를 받고 있을 때엔 그의 변호를 맡기도 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후에는 병원에서 공개 기자회견을 열어 고인의 사망 소식을 전하였으며, 화장 후 노 전 대통령의 장남인 노건호 씨와 함께 고인의 뼈를 빻는 일도 하였다. 노 전 대통령 사후에 설립된 노무현재단의 이사장으로 일하기도 했으며 현재도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있어서 문재인이라는 사람은 가장 필요한 순간마다 함께 했던 동료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유력 정치인이 잘 나갈 때에는 그의 곁에 수많은 사람이 몰려들어 편을 들어주지만, 그의 인기가 떨어지고 정치적으로 쇠락하기 시작하면 손바닥 뒤집듯이 단호히 선을 긋고 떠나가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우리나라 정치 세계에서 보기 드문 모습이다.

문재인이란 사람에 대한 노무현의 신뢰가 어떠했는지는 노 전 대통령이 후보였던 시절 부산에서 했던 연설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저는 제가 아주 존경하는, 나이는 저보다 적은 아주 믿음직한 친구 문재인이를 제 친구로 둔 것을 정말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나는 대통령 감이 됩니다. 나는 문재인을 친구로 두고 있습니다. 제일 좋은 친구를 둔 사람이 제일 좋은 대통령 후보 아니겠습니까?”누구는 나쁜 친구를 두고 있어서 대통령감이 아니라 카더라 – 실제 연설 영상

그야말로 신뢰의 끝. 문재인이 노무현 당시 후보의 부산 지역 선거대책본부장을 맡고 있었고, 이 연설을 부산에서 했던 것을 미루어 보면 그냥 립서비스가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권을 잡은 후에도 문재인을 계속 중용하였고, 퇴임 이후에도 계속 그를 곁에 두었다. 이것을 보면 고인이 진심으로 믿었던 사람인 셈이다. 사실 노무현은 성품이 직설적이라서, 립서비스와는 상극이었다.
4.2. 안철수와의 관계[편집]
안철수/정치 문서 참고.

2016년 주요 기관 차기 대선 여론조사를 보면, 기복이 큰 안철수 의원과 달리 문재인 전 대표는 꾸준하게 20%대 지지율로 반기문 UN 사무총장과 함께 선두권을 지키고 있었다. 다만 호남 지지율만 놓고 본다면 20대 총선에서 국민의당이 놀라운 성적을 거둔 직후부터는 안철수 의원의 지지율이 계속 우세를 보여왔다. 그러나 박근혜 탄핵 정국에서 안철수 의원이 이렇다 할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하는 바람에 안 의원의 지지율도 점점 떨어지기 시작했고 결국 이재명 성남시장에 이어 황교안 총리에게까지 지지율이 뒤쳐지는 안습 지경에 이르렀다. 반면 문재인 전 대표는 비문 성향의 언론과 정치권의 집중 견제를 받는 상황 속에서도 각종 여론조사에서 꾸준히 1위를 유지하며 ‘문재인 대세론’의 불을 살려나가고 있다. 게다가 근래에 들어서부터는 호남권에서조차 문재인 전 대표가 안철수 의원을 큰 격차로 제치고 있다고 한다.
4.3. 박원순과의 관계[편집]
일단 사법연수원 시절부터 문재인 전 대표와 박원순 서울시장은 친분이 있기도 했지만, 박원순 시장 본인부터 노무현과도 인연이 있고, 문재인 등 여러 친노 진영의 도움을 받기도 했으며, 박원순 시장 스스로도 친노를 자처하기도 했다.[42] 문 전 대표도 박 시장에게 호의적이기도 하고. 상호 경쟁자로 인식하고 있기도 하면서 서로를 비판할 때도 있지만,[43] 둘의 관계는 돈독하다고 알려져 있었다.

다만,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을 앞두고 문재인 전 대표 쪽을 ‘청산돼야할 기득권 세력’이라고 공격한다거나, 호남에 내려가 ‘참여정부가 호남을 홀대했다’고 주장한다거나 더불어민주당의 대선 후보를 뽑을 대선 후보 경선의 룰을 정하는 일에도 비협조적인 태도를 취하는 등의 네거티브 전략을 선택하면서 문재인 전 대표를 지지하는 지지층 사이에서는 박 시장의 이미지가 크게 나빠졌다.

이전 서술에서는 저조한 지지율 극복을 위해서 박원순이 문재인을 비판했다는 서술을 했지만 박원순이 바보도 아니고(…) 당 내 지지율 부동의 1위인 문재인을 비판했다가 역으로 넘겨지는 다른 후보들을 보고서도 단순히 정치공학적 계산으로 문재인을 공격했을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 이에 대해 한겨래에서 문재인 캠프의 사람 빼가기 밑 “차기 서울시장 후보직을 특정 친문 정치인에게 내정했다”는 이야기가 나와 박 시장이 문재인 캠프에 비판적이 되었다는 내용의 기사가 있었다. 물론 이 또한 박 시장 측의 입장이니 위키러들은 알아서 판단하자.
4.4. 기타[편집]
· 2014년 10월에는 눈가가 부은 모습으로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장에 출석해 잠깐 화제가 되기도 했다. 누구세요? 보톡스 및 성형 시술의 부작용이 아니냐는 둥 별의별 소리가 나왔었으나, 고향에서 제초 작업을 하다 벌레에 쏘인 것이 악화되어 저렇게 됐다고.

· 대한민국 역대 대선 후보들 중 최고의 미남으로 손꼽히며 역대 국회의원들 중에서 손에 꼽힐 정도다. 60세가 넘은 나이지만 미노년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위 사진들처럼 각종 시설에서 일일 체험을 하는 행사 등에서 여러 가지 복장을 입을 때가 있는데, 뭘 입어도 30년은 종사한 전문가로 보인다는 코스프레 옷빨(…)이 매우 좋은 인물이다. 젊은 시절의 사진을 보자. 고등학교 졸업 사진과, 특전사 시절 사진과, 아버지가 된 중년 시절의 사진. 그 덕에 얼빠도 꽤 있는 편. 19대 대선에서는 안희정의 등장으로 조금 밀리는 편(?)이다.
· 주사가 굉장히 귀엽다. 문재인의 아내 김정숙 여사의 말에 따르면 술을 좀 과하게 마시고는 옆 집 문을 두드린 적도 있고 기분 좋게 한 잔 걸치고 들어온 날이면 외출복 그대로 입은 채로 반려견인 마루와 껴안고 마당을 뒹굴고 둘이 누워 있곤 했다고 한다. 뭐하느냐고 물어보면 마루랑 달구경을 한다나 어쩐다나.. 마당에 앉아 나무와 몇 시간이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고.
· 아기들과 학생들에게 인기가 매우 많은 편이다. 특히 아기들과의 케미가 단연 최고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아가들이 문재인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는 사진과 동영상이 유독 많고 본인도 그걸 굉장히 할아버지 미소를 지으며 흐뭇해한다 좋아해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아기들이 순수해서 보는 눈이 있는 것이라고 농담하곤 한다.[44]

이 사진은 제49회 한국보도사진전 people in the news 부문에서 <아이의 시선으로>라는 제목으로 최우수상을 받았다.

안아주데여 피리부는 문재인 학생들을 떼거지로 몰고 다닌다.

제87주년 광주 학생 독립운동 기념식이 끝나고 차에 탑승한 문재인이 행사에 참여한 고등학생들이 보고 싶어 한다는 말에 차에서 다시 내려 학생들을 만나고 있다.

10대 학생들에게도 엄청나게 인기가 있어, 아이돌 가수 저리가라 할 정도다.
· 문재인을 가까이서 지켜본 많은 사람들의 평가는 단연 젠틀맨이라는 평이 많다. 청와대 민정수석 시절 모든 비서관들에게 존칭을 썼다는 유명한 일화도 있고, 종편 등에서 여러 방송을 진행했던 박종진[45]은 문재인의 인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흠 잡을 부분이 없는 분.”이라고 극찬했다.
· 인터넷 커뮤니티 상에서는 명왕이라 불리기도 한다. 그 이유는 문재인의 외모와 원피스에 등장하는 명왕 실버즈 레일리의 외모가 상당히 닮았기 때문.
· 상도동계 중, 김영삼 前 대통령의 직계 후계자 중 한 명으로 불리는 강삼재 前 의원과 대학교 동기이자 친구다. 그 덕분인지, 상도동계의 김덕룡 및 상도동계의 주요 인사들 상당수와 김영삼 전 대통령의 둘째 아들인 김현철 고려대학교 지속발전연구소 연구교수도 문재인을 지지하기 시작하면서, 이걸 계기로 김영삼 전 대통령과도 안면을 트게 되었으며 김 전 대통령이 별세한 이후 문재인은 고인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였다. (이때, 김영삼의 장례식에서 이명박과도 만나서 인사를 나눴다고(…) ) #) 김영삼 전 대통령은 3당 합당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과는 사이가 틀어져 있었지만, 문재인은 인정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덕분에 문재인의 지지층의 폭이 더욱 넓어지는 이점을 얻게 되었다.


둘이 서로 무슨 생각을 했을까
·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와 동문이다. 생애란에도 적혀 있지만, 김 전 대표와 경남중학교 선후배 지간이며, 문재인 전 대표가 후배다. 그래서 2015년 2월 경남중학교 동문회에서 만나기도. 싸우길 싫어하는 문재인과 호방한 김무성이 서로 정치를 떠나서 케미가 잘 맞는 듯하다. 심지어 정책 문제로 서로 으르렁댄 다음 날 총동문회에서 만나 서로 간지럼태우며 장난치는 사진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 밖에도 문재인은 김무성의 차녀 결혼식에도 깜짝 등장해 덕담을 전하기도 했다. 문재인과 김무성은 서로 반대 진영에 있지만 사적으로는 상당히 친한 사이로 알려져 있어 일가 행사 때 김무성이 같은 당 사람들은 공과 사를 따로 하여 초청을 안 할 때도 문재인은 사적으로 연락해서 초대하기도 한다. 이를 본 누리꾼들은 위험한 상상을 하며 온갖 드립을 쏟아내기도 하는 모양이다(…) 이런 식으로…[46]
· 지난 대선 시즌 때 보수 언론들이 경상남도 양산시에 있는 문재인 당시 후보의 자택 일부가 무허가로 드러났다며 해명을 요구했는데, 그 ‘일부 무허가’라는 게 집의 지붕이 약 몇 cm 정도 삐져나온 걸 말하는 것으로 드러나 누리꾼들로부터 비웃음만 샀다. 게다가 문재인 당시 후보가 집을 지은 게 아니라 이미 지어진 집을 샀던 것이라서 문재인 후보의 잘못도 아니었고, 문제의 지붕도 건축물법 위반 사항에 해당되지 않는 것으로 밝혀져 잘못이라 부를 일도 아니었다. 이 사건을 기억하는 누리꾼들은 이 일을 ‘처마게이트’라고 부르는 듯. 이 건에 대해서 양산시는 진지하게 받아들였는지 처마를 복구하라는 행정명령을 내렸으나, 결국 이 건으로 대법원까지 갔고 2016년이 되서야 문재인이 승소했다.
· 제18대 대통령 선거 중 TV 대선 광고 중 문재인 당시 후보가 앉아있던 의자가 고가 브랜드 제품으로 알려져[47][48] 서민 코스프레’를 한다는 비판을 받은 적이 있다. 이에 문재인 당시 후보의 아내인 김정숙 씨는 “아파트 모델하우스에 전시됐던 소파를 아는 분이 ‘땡처리'(재고품을 싸게 사고 파는 것)로 싸게 샀고, 나중에 그걸 제가 50만 원에 산 중고품입니다”라고 해명했다.[49]
· 동남 방언, 그중에서도 거제도 방언은 ‘쌍시옷(ㅆ)’ 발음을 잘 못 한다.[50] 덕분에 대선 토론회에서 박근혜 당시 후보가 눌변으로 비판을 받는 와중에도 비슷한 비판을 받아야 했다. 발음이 좀 새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청와대 민정수석 재직 시절 과로로 치아가 10개 정도(!) 빠져서 임플란트로 대체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18대 대선 당시 정치 풍자를 위주로 했었던 SNL 코리아에서는 이를 개그 소재로 써먹기도 했다.
· 이름 재인이 영어권의 여성 이름인 제인(Jane)과 발음이 비슷하여 Jane Moon 등으로 장난 삼아 불리기도 한다. SNL 코리아의 여의도 텔레토비에서 ‘문제니’라는 이름으로 패러디한 바 있어 문제니라 불리기도. 위에 서술된 금괴 드립과 관련해서는 금괴인, 황금왕, 문수르 등의 드립으로 불렸다. 안티들에게는 주로 ‘문죄인’이라는 멸칭으로 불린다.
· 풍산개도 길렀었다. 이름은 마루. 지금은 문재인의 딸이 고향인 양산에서 키우고 있다. 술버릇이 마당에 앉아서 마루와 몇 시간이고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한다. 씹덕킹 문재인 여담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도 이 개를 길렀었다고 한다. 뉴스1 그리고 스피츠도 길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죽은 박정희 전 대통령도 이 개를 길렀던 적이 있다고(…)한겨레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반려견 취향인가 보다 유기견이었던 강아지를 지순이라고 이름짓고 기르고 있다고 한다. 헤럴드경제 또한 찡찡이라는 유기묘도 기르고 있다.
· 대선 후보 당시 한국경제에서 진행한 문답 인터뷰에서 좋아하는 아이돌 스타로 아이유를 꼽았다. 대학 포기 선언[51]을 한 것에 깊은 감명을 받은 듯하다. 이 외에도 그의 트리비아에 대해 언급이 많은 기사. 기사 원문
· 성씨가 ‘문'(MOON)인 탓에 지지자들 중 일부는 애칭으로 ‘달님’ 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반문 세력들은 반대로 친문 세력들을 ‘달레반’이라는 멸칭으로 부른다.
· 20~30대 젊은층의 지지율이 높은 편이다. 제18대 대통령 선거 당시 문재인이 가장 높은 득표율을 보였던 계층이 20대 여성(69%)이었고,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지원 유세 사진과 영상들만 봐도 같이 사진 찍으려는 젊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20대 여성 (69%) > 30대 남성 (68%) > 30대 여성 (65%) > 20대 남성 (62%) 순으로 지지가 높았다. 반면 50대 이상 노년층에서는 낮았다.
· 롯데그룹 비리 의혹 수사 중, 롯데홈쇼핑 대표이사 강현구와 많이 닮아 관심을 받기도 했다.#
· 2014년 8월에 대구광역시의 한 취객이 문재인 당시 의원을 죽이러 간다고 경찰에 전화를 걸었다가 검거되는 일이 있었다.# 문재인 의원이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유가족들을 위해선 그렇게 열심히 뛰면서 정작 대구 지하철 참사가 일어났을 때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는 게 그 이유였는데, 사실 문재인 의원은 대구 지하철 참사가 발생했을 때 유족들을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단지 이를 알리지 않았을 뿐이었다. 13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 그 사고로 부모님을 잃었던 유족 박성찬 씨가 문 의원의 경상남도 양산시 자택을 방문해 문 의원을 만나고 SNS에 남긴 글이 공개되면서 그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다.#
· 상술되어 있다시피 인터넷을 많이 활용하는 20대~30대 젊은 층에게서 주로 높은 지지를 받는 정치인이라, 웹 상에서 지지자들이 엄청나게 많고 활동도 왕성하다. 다른 민주 & 진보 진영의 정치인들 문서와 문재인 문서를 비교해 보면, 비판이나 논란 또는 악성 루머가 서술될 때마다 다른 문서들에 비해 신속하게 세세한 반론과 교정이 붙는다. 현 야권 인사라도 문재인을 비난하는 언행을 보이면 비난 받는 일도 있다. 사실 비판이 아닌 비난은 당연히 욕 먹는다. 한 예로 2016년 11월에는 이재명 성남시장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달린 답글들에 일일이 ‘좋아요’를 누르다 문재인 전 대표를 비방하고 인신공격하는 악플들에게도 좋아요를 눌렀다가 융단 폭격을 맞은 일이 일었다. 자세한 건 이재명(1964)/사건사고 문서를 참조.
· 2016년 1월 미국의 NBC 뉴스에서 이란 관련 소식을 전할 때 지난 18대 대선 때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후보 측이 입고 다녔던 유니폼 패딩을 입은 현지인이 포착되어 화제가 되었다. 해당 영상의 13초, 23초 부분에 등장한다. 대강 추측해본다면 이 옷이 처분과정에서 자선단체나 의류수출업체 등으로 기증 혹은 처분되었고,[52] 이것이 이란 쪽으로 흘러들어가 글씨의 의미를 모르는 누군가의 손에 들어가게 된 것으로 보인다.
· 노무현과 이명박이 자덕인 것과 달리, 문재인은 자전거가 아닌 등산을 즐겨하는데, 60대의 나이에도 히말라야 등반까지 할 정도로 등산을 즐겨하는 산악인 체질이다. 또한 병역 의무를 특전사로 마쳐서인지 정치계 유명 인사들 중 체력도 수준급이라고. 문무겸비? 다만 치아 상태가 나쁘다고 한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이가 흔들리다가 빠지는데,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근무했을 때 업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잇몸이 허물어지고 이가 다 빠져(!) 현재의 치아 모두 임플란트라고. 그의 발음이 약간 새는 데에는 바로 이런 이유가 있다. 게다가 더불어민주당의 유력 대권 주자로서 대선 준비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고 있는지 최근 탈모가 심각한 수준으로 진행 중이라고 한다. 특히 앞머리 쪽과 머리 뒤쪽에 원형 탈모가 급속히 진행되어 점점 대머리가 되어가는 중이라고(…)
· 썰전 2016년 11월 24일 방송분에서 유시민의 전화로 전원책과 김구라와 인터뷰를 했다.유튜브 영상# 그리고 전원책 변호사는 19대 대선에서 맞붙자며 도전장을 냈다
·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일하던 시절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당시 한나라당 의원들과 주고받은 질의응답이 화제가 됐다. 질의응답 내용 자체는 크게 특별할 것은 없었으나, 대체적으로 ‘사람이 너무 부드러워서 문제다’라는 소리를 듣던 문재인 전 대표에게도 나름대로 이런 ‘까칠한’ 면모가 있었다는 점에서 유명세를 탔다.영상
· 2016년 11월 22일, 인터넷 커뮤니티인 엠엘비파크에 문재인 전 대표와 그의 남동생 문재익 씨에 관련된 일화가 하나 올라왔다. 이 일화의 필자는 상선의 선장으로 일하고 있었던 문재익 씨의 대학 후배이자 부하 선원이었다. 참여정부 시절 문재인 전 대표가 대통령 비서실장이 되자, 문재익 씨가 일하고 있었던 선사에서 문재익 씨를 해상직에서 육상직의 고위직으로 승진시켰다고 한다. 그 사실을 안 문재인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 문재익 선장에게 연락해서 “선사에서 그런다고 그 선사에 도움을 주는 일 따윈 없을 테니, 다시 선장으로 돌아가는 게 좋을 거다”라고 하였고, 결국 문재익 씨는 선장으로 복귀하게 되었다고 한다. 필자는 이 이야기를 술자리에서 들은 듯하다. 문재익 선장이 만취한 상태에서 형 욕을 하며(…) 그날의 서운함을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그때 처음으로 들었고, 그때서야 자기가 모시던 선장이 문재인 전 대표의 동생이었단 것도 알게 됐다고.# 참고로 문재익 씨가 일했던 선사는 지금은 사라진 STX였다고 한다. 이 일화가 인터넷에서 화제를 타자 작성자가 부담을 느꼈는지 해당글은 엠엘비파크에서 삭제된 상태다.
· 사드 배치 논란에 대해서는 배치 반대 쪽으로 알려져 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사드 배치는 사드가 들어설 곳의 지역 주민들이 감내해야 할 피해와 우리가 부담해야 할 비용, 그리고 인접 국가들과의 갈등 조정 등의 문제가 있어 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할 사안이 아니므로, 충분한 공론화 과정을 거친 뒤 결정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되도록이면 설치하지 않는 게 좋겠지만 그렇다고 찬성하는 쪽의 주장 또한 묵살할 게 아니라는 ‘신중론’에 가깝다. 그런데 사드 배치 합의가 된 지 시간이 오래 지났고 미국 쪽에서도 강한 의지를 보이는 터라 사드 배치 취소가 어렵긴하다고 입장이 좀 변한 듯한 발언을 했다.# 그러나 여전히 차기 정부문재인 정부에게로 공을 넘겨 제대로 매듭을 지어야 한다는 입장을 계속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다.
· 2016년 12월 17일, 경향신문이 박근혜 당시 유럽코리아재단 이사가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전달한 편지를 입수해 공개했다.# 이 사건은 나무위키에 박근혜 편지 사태라는 문서에서 다루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내용을 보면 대체적으로 친북적이고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을 극진하게 예를 갖춘 문체로 물으며 심지어 남북이 아닌 북남이라고 쓴 표현까지도 찾아볼 수 있다.# 그러자 누군가가 박사모에 이 편지를 문재인 전 대표가 쓴 것이라고 속여 게시했는데 박사모에선 ‘역시 문재인은 빨갱이다!’라며 이 편지를 널리 알려야 한다며 이 편지를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려 박근혜 대통령을 사실상 팀킬하는 위업(?)을 달성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손가락 혁명군도 여기에 낚여 이 편지를 문재인이 썼다면서 퍼날랐다고 카더라(…)#
· 주한미국대사 피습 사건때 리퍼트 대사를 위로 방문하고 더불어민주당 브리핑 주한미군은 통일 후에도 계속 있어야한다고 했었다. 연합뉴스, 혈맹은 혈맹이라면서 한미는 70년 친구 사이라고 했다 문재인 전 대표 유투브 1:57부터 시작
· 도널드 트럼프에게 미국 대선 당선을 축하하는 축전을 보냈었다 (물론 개인적인 호감이 아니고 한미동맹 차원에서 대통령 축하로 볼수있다) YTN
· 한미동맹은 우리 외교의 근간이지만 미국에게도 NO를 할 수 있어야한다고 뉴욕 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자주성을 강조했다. 북한에대해서도 북한 체제는 싫지만 대화는 할 수 있어야한다고했다 연합뉴스
· 야구팬이라고 한다. 김응용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회장이 그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을 때 본인이 야구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고 김응용의 팬이었다고 밝혔을 정도.
· ’19대 국회의원’ 항목에 잠깐 쓰여져 있기도 한데, 세월호 참사로 숨진 단원고 2학년 김유민의 아버지 김영오가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장기 단식에 돌입했을 때, 문재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나치게 단식을 오래한 나머지 생명의 위협까지 받는 상황에 처한 김영오를 설득하다가 끝끝내 그의 고집을 꺾지 못하자, 김영오가 단식을 중단할 때까지 자신도 동조 단식을 하겠다며 아예 함께 단식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훗날 공개된 김영한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망록에는 이 일에 대한 김기춘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의 지시 사항도 적혀 있었다. 일각에서는 김기춘 실장의 지시를 적은 이 메모를 근거로, 그때 박근혜정부에서 김영오가 단식 때문에 죽으면 그때 동조 단식을 했던 문재인 의원을 자살방조죄로 엮어 ‘치워버리려고’ 김영오가 죽기를 내심 바라고 있었던 거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였다.#1#2 [53]
· 2007년 일본 정부가 우토로 마을[54]의 도시화, 개발 & 정비 사업을 한다는 명목으로 마을을 철거하려고 했을 때 당시 문재인 대통령 비서실장은 그 소식을 접하고 정부 예산 30억 원을 우토로 마을에 지원하도록 도와 마을 부지 6000평 중 2000평을 매입할 수 있게 해서 우토로 마을 주민들이 거주권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일조했다. 그로부터 5년 뒤인 2012년 우토로 마을 주민회는 도움의 손길을 내민 사람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면서 당시 참여정부의 지원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문재인 측에게도 감사패를 전달했다.#
· 2012 런던 올림픽과 2012 18대 대선을 앞두고 있었을 때 직접 유도복까지 입으면서 유도 국가대표 선수단을 만나서 격려한 적이 있었다. 연합뉴스
· 문재인 전 대표를 지지하는 모임인 ‘더불어포럼’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된 2017년 2월 17일 공식 팟캐스트 방송을 개시했고 이틀 뒤인 2월 19일에 첫 방송이 업로드 되었다. 방송의 이름은 ‘달이 빛나는 밤에’라고 하며, 이정렬 전 부장판사가 진행을 맡았다고 한다.
· 2017년 3월 1일 위키백과의 문재인 문서[55]에 문재인의 국적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으로 수정하는 반달 사태가 발생했다. 이 덕에 이재명 문서와 더불어 관리자 수정으로 격상되었으며, 더민주 측은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발표했다.
· 기레기들에 의해 친박 태극기 집회 참석자가 되었다고 카더라(…) ‘앗, 문재인이 태극기를 들고 집회에?’
4.5. 금괴 루머[편집]
2012년 대선 당시 대한민국어버이연합 등 극우 세력들이 “과거 문현동에 있던 어뢰 공장에 일제가 숨겨놓은 금괴 1,000톤을 문재인이 몰래 탈취했다”는(…) 내용의 루머를 한 인터넷 게시판에다 퍼뜨렸다. 게다가 자기앞수표로 약 20조 원의 비자금을 갖고 있다는 루머를 퍼뜨리기도 했다.

하나하나 뜯어보면 말도 안 되는 주장뿐인데. 우선 자기앞수표는 20조라는 터무니 없는 금액(이건희의 공식 재산이 15조 원 정도로 추정된다)은 둘째치더라도 일단 자기앞수표라는 물건은 추적이 용이해 비자금으로 쓸 수 있는 수단이 아니다. 그리고 수표라는 것은 수표 발급자가 해당 은행에 계좌를 만들고 그만큼의 금액이 있어야 쓸 수 있는 물건이고, 반대로 은행 측에서도 수표 사용자가 돈을 쓸 경우를 바로바로 내줘야하는 물건인데 만약 은행에서 이 정도 돈이 빠져나가면 검찰 추적이 문제가 아니라 해당 수표 발급 은행이 뱅크런난다. 2016년 기준으로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민간은행인 신한은행과 kb은행의 경우 총 자산이 각각 400조, 380조 정도인데 총 자산의 5% 이상을 즉시 빼가는 일이 일어난다면 그 은행의 업무는 사실상 마비가 될 테고 국가도 이 정도 돈을 처리하려면 한국은행으로는 택도 없고 국회에서 총의결을 거쳐야 할 사안이다.

그리고 논란의 금괴는 사회학적인 문제가 아니라 물리학적으로 불가능한 문제다. 문제의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은 중앙은행에 보유한 금괴가 광복 이전 최호황기였던 1925년 기준으로 860톤이 조금 넘었고, 대공황과 중일 전쟁으로 일본 경제가 개막장이된 1940년에는 중앙은행 금 보유고가 겨우 145톤으로 수직낙하해 버렸다.(출처: World Gold Council, Central Bank Gold Reserves An historical perspective since 1845) 만약 일본이 금 1000톤을 숨겨 둘 정도의 금을 가지고 있었다면 공황과 군부 폭주도 막아 태평양 전쟁도 안 벌였을 가능성도 있다. 루머를 처음 제창한 극우 세력도 자기들이 오버했다고 느꼈는지 슬그머니 숫자를 200톤으로 줄였는데, 위에서 언급했듯이 1940년 기준으로 일본은 금이 150톤도 없는 상황이었다.

지금도 2016년 기준으로 중앙은행에 문재인이 가지고 있다고 카더라는 금 1,000톤 이상을 보유한 국가는 세계에 미국,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중국, 스위스 딱 이 6개국밖에 없고, 금이 200톤만 있어도 ”’세계 21위의 금 보유국이 된다(…) 참고로 21세기 대한민국의 금 보유량은 104톤, 영국의 금 보유량은 310톤이다 이정도면 원피스를 털어도 힘들고 문재인이 연금술사라서 금 200톤을 연금술로 만들어냈다는 말이 그나마 믿을 만하다 그래서 일부 누리꾼들은 “오히려 문재인을 대통령으로 찍어야 제대로 된 복지 국가가 만들어질 것”이라며 보수 누리꾼들을 역으로 조롱하기도 했다. 오죽하면 문재인에게 ‘금괴왕’이라는 별명을 붙여줄 정도다.

그런데 2015년 12월 30일 오전 9시경, 부산 사상구에 있는 문재인 의원 사무소로 한 50대 남성이 흉기와 시너를 들고 난입해 사무실 직원들을 인질로 잡는 사건이 일어났다. 사건이 알려진 초기에만 해도 “금괴를 노리고 괴한이 침입했나?”며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농담 따먹기나 하고 있었는데… 실제로 인질범은 사무실 소화기로 유리창을 깨고 “문재인 대표가 금괴를 훔친 도굴범이므로 문재인 대표를 즉각 구속해야 한다”고 쓰여진 현수막을 내걸었다.

이 인질범은 출동한 경찰특공대와의 대치 끝에 오전 10시 16분 경 결국 경찰에 체포되었는데, “부산 문현동에 있던 일본 어뢰 공장에 금괴가 숨겨져 있었다는 진실이 참여정부 때문에 가려져 내가 피해를 봤기 때문에,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었던 문재인 대표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고 한다. 다행히도 사건 당시 문재인 대표는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의 타계 4주기 추모 행사에 참여 중이어서 지역구 사무실에 없었고, 이에 정씨는 문 대표의 특별보좌관인 최모 씨를 인질로 잡았던 것이다. 인질극은 1시간여 동안 지속되었고, 정모 씨가 스스로 인질을 풀어주면서 막을 내렸다.

경찰은 정모 씨가 정신 이상자인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다른 기사에서는 경찰이 이 인질범의 정신 상태가 정상이라고 본다는 소리도 나오는 데다가, 이 자가 과거 부산항 금괴 450톤 이야기로 투자자를 모았다가 사기 혐의로 실형을 산 정 씨의 동생이라는 소리도 나왔다. 정리

이와 관련해서 일부 언론에서는 피해자인 문재인 대표를 향해서 ‘부산 민심이 흉흉하다’며 ‘문재인에게 문제가 있어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 아니냐’며 답정너식으로 성토를 했다.

그중 MBN은 더불어민주당 당명 개정 이후 1호 입당 인사인 표창원 전 경찰대학 교수를 초대했는데, 표 교수에게 문재인에게 잘못이 있는 것 아니냐며 묻기까지 했다. 이에 표창원 교수는 “2006년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면도칼 테러를 당한 건 (그 범인이 정신병자였기 때문이지) 박근혜 대표가 잘못해서 일어난 일이냐”고 반박했고, 앵커는 음오아예만 불렀다.음오아예 패러디 영상

2016년 1월 27일 당대표직에서 물러나면서 더불어민주당 디지털미디어국으로부터 선물을 받았는데, 금화 모양 초콜릿 한 상자였다. 더욱이 “금괴는 댁에 많으실 테니”라는 드립으로 확인사살. 퇴직금(?)을 받은 문재인 의원은 매우 기뻐하며, 회식 중 직원들에게 금화(?)를 뿌리기도 했다고 한다.(…) 뜻밖의 유머 감각

브렉시트로 금값이 폭등하자 ‘재산이 단 하루 만에 6,000억 원이나 늘었으니 브렉시트의 최대 수혜자는 문재인 전 대표다!’라는 드립도 등장했다. 실제로 오래 전부터 어떤 노인이 이러한 내용의 루머가 적힌 내용의 피켓을 들고 서울시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사진이 짤방화되어 돌아다니면서, 금세 위의 레일리 드립과 얽혀 대비보 원피스를 빼돌렸다느니 하는 개드립이 다시 탄력을 받게 됐다. 나중에 가서는 엄청난 금괴의 양을 두고 “엘도라 도(道) 지사”라는 드립까지 나왔다.
대전에 와서 금괴 의혹을 자백했다[내용]

2016년 탄핵 촛불 집회도 문재인이 160만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금괴를 뿌려 사주한 일이라고 한다

보여준 적 없다는 것이 숨기고 있다는 결정적 증거라 카더라.#[57]
5. 친문[편집]
문재인 전 대표를 지지하는 그룹이다.
6. 약력[편집]
· 1980 제22회 사법시험 합격
· 1982 제12기 사법연수원 수료
· 1982 노무현·문재인 법률사무소 변호사[58]
· 1984 한국해양대학교 해사법학과 강사
· 1985 부산민주시민협의회 상임위원
· 1987 부산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상임집행위원[59]
· 1988 한겨레신문 창간위원 및 부산지사장[60]
· 1989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이사
· 1995 법무법인 부산 대표변호사
· 1995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부산지부 대표
· 1995 부산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장
· 1996 부산YMCA 이사
· 2001 노동자를 위한 연대 공동대표
· 2002 제16대 대통령 선거 노무현 후보 부산선거대책본부장
· 2003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
· 2004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피청구인 대리인단 간사
· 2004 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수석비서관
· 2005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
· 2007 대통령비서실장
· 2007 제2차 남북정상회담 추진위원장
· 2009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위원회 및 상임집행위원장
· 2009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상임이사
· 2010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
· 2011 혁신과통합 상임대표
· 2012 제19대 국회의원
· 2012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 2012 제18대 대통령 선거 후보
· 2012 민주통합당 대표대행
· 2015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 2015 더불어민주당 대표
· 2015 더불어민주당 인재영입위원장
· 2016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
7. 가족관계[편집]
· 아버지 : 문용형 (1920년 ~ 1978년)
· 어머니 : 강한옥 (1928년 ~ )
o 누나 : 문재월 (1949년 ~ ) 주부
o 배우자 : 김정숙 (1954년 ~ )
§ 아들 : 문준용 (1982년 ~ ) : 건국대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하고 미국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디어 아티스트로 알려져 있고, 2011년 광주비엔날레에 ‘마쿠로쿠로스케 테이블’이라는 작품을 출품한 적이 있다. 2014년 2월 결혼, 장인이 예장 통합 측 목사라고 한다.
§ 딸 : 문다혜 (1983년 ~ ) 2010년 3월 결혼.
o 여동생 : 문재성 (1955년 ~ ) 주부
o 여동생 : 문재실 (1957년 ~ ) 지금 부산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같이 살고 계신다고 한다.
o 남동생 : 문재익 (1959년 ~ ) : 해양대 해사대학을 나와서 상선 선장으로 알려졌다.
8. 저서[편집]
· <문재인의 운명>, 가교출판, 2011년 6월 15일 #
· 공저,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 : 무소불위의 권력 검찰의 본질을 비판하다>, 오월의봄, 2011년 11월 23일 #
· <사람이 먼저다 : 문재인의 힘>, 퍼플카우, 2012년 8월 6일 #
· <문재인이 드립니다 : 꿈을 놓아버린 이 땅의 청춘들을 위한 포토에세이>, 리더스북, 2012년 8월 13일 #
· 공저, <그 남자 문재인 : 함께 만드는 세상>, 리얼텍스트, 2012년 11월 20일 #
· <1219 끝이 시작이다>, 바다출판사, 2013년 12월 10일 #
· <대한민국이 묻는다 : 완전히 새로운 나라, 문재인이 답하다>, 21세기북스, 2017년 1월 17일 #
9. 선거 이력[편집]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부산 사상) 민주통합당 65,336 (55.1%) 당선 (1위) [61]
2012 제18대 대통령 선거 민주통합당 14,692,632 (48.0%) 낙선 (2위) [62]
10. 관련 문서[편집]
· 노무현
· 더불어민주당
· 제18대 대통령 선거
· 참여정부
· 친노
· 친문
· 더문캠
· 실버즈 레일리
· 엘도라도

[1] 2017년 올해 나이 90세이다.[2] 누나 1명, 남동생 1명, 여동생 2명이 있다.[3] 참여정부에서 민정수석을 두 번 역임했다.[4] 주로 지지자들이 쓰는 말로, 그의 성씨가 문(Moon)인 것에서 비롯됐다.[5] 만화 원피스 캐릭터인 명왕 실버즈 레일리와 닮았다고 해서 생긴 별명. 자세한 내용은 트리비아에 쓰여져 있다.[6] 참여정부 때 신설된 부서로, 노무현 대통령이 ‘정부와 민간 부문 간의 협력을 통한 국정 운영’을 뜻하는 ‘거버넌스(governance)’를 실행하려고 만든 조직이다.[7] 쉽게 말해 그 이전 대선의 당선자들보다도 더 많은 표를 얻었다는 얘기다. 참고로 가장 많은 표를 받은 후보는 당연히 그 18대 대선에서 당선된 분. 18대 대선 막바지에 이루어진 전면적인 야권 단일화의 영향이 컸다.[8] 그동안 더민주의 주류 세력은 친노무현계와 친노와 가까운 ‘범친노계’라는 그룹들이라는 게 대체적인 주장이었다.[9] 친문이라 불리는 그룹이 있는 건 맞지만 새누리당의 친박계처럼 실체가 뚜렷한 그룹인 건 아니다. 그리고 ‘친문’이라 불리는 사람 중에 더민주 지지층에게서 지지를 많이 받는 스타 의원들이 여러 명 거론되는 것도 맞지만 이 그룹이 당 내 다수파인지도 아직 명확히 검증된 건 아니다. 그러나 더민주에서 가장 관심을 많이 받는 그룹인 것은 확실하다.[10] 옛날에 스승에게 감사의 뜻으로 제자들이 다달이 바치던 돈. 좋게 말하면 다달이 내는 수업료라고나 할까.[11] 김무성의 1년 후배다. 의외로 사적으로는 친한 50년 지기 형동생 사이라고 한다. 정치인들 초대를 꽤 자제했던 김무성 딸의 결혼식에 문재인이 오자 놀랍게도 김무성이 문재인 있는 곳으로 찾아가서 ‘어 문재인이 왔나? 고맙다’라며 환영했다는 건 꽤 유명한 일화. 당시 김무성의 주변 사람들도 꽤 놀랐다고 한다. 물론 문재인은 정치적인 입장을 떠나 순수하게 신부 아버지의 지인으로서 간 것이었다. 정치적 입장만 놓고 보면 2012년 대선 때, 지금은 거짓으로 밝혀진 노무현 대통령 NLL 포기 발언 논란에 불을 붙여 문재인 당시 후보를 종북 좌파로 모는데 크게 일조한 사람이 김무성이었다.[12] 당시 총학생회장은 한나라당 부총재를 지냈던 강삼재 전 의원, 집회 당일 경찰의 불심검문을 따돌리고 학교에 늦게 도착해 문재인 의원이 총대를 멘 격.[13] 이 판사는 시국사건을 집행유예로 풀어줬다고 얼마 후 판사 재임용에서 탈락해 법복을 벗었다고 한다.[14] 후술되어 있지만, 재밌게도 대표적 보수 논객인 전원책 변호사 역시 문재인 전 대표와 경희대 법대 동문이라는 사실이 썰전에서 알려졌다. 문재인 전 대표보다 무려 3년 후배라고(…) 전원책은 문재인을 그 시절에 직접 만난 적은 없었지만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15] 항목에 좀 더 자세히 기술돼 있는데, 전두환, 노태우 등 신군부 세력이 일으킨 12.12 군사반란 때 장태완 장군과 더불어 맞서 싸웠던 몇 안 되는 장군이었다.[16]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에 가면 사진이 있다. 참고로 그 ‘예비부대’는 전쟁이 일어난다면 북한에 침투할 계획이었다고 한다.[17] 당시는 ‘운동권’이라는 단어가 없었다.[18] 사실 대학 재학 시절이었던 3학년 때 1차에 첫 합격을 했었다. 이때가 1974년인데, 아마도 이 직후에 감옥에 가고 강제 징집이 되었기 때문에 시험을 다시 봐야하는 상황에 처했던 걸로 추측된다.[19] 경희대 법대 3학년 재학 시절 재밌는 일화가 또 하나 있는데, 문재인은 유신 헌법 반대 시위를 하면서 학교 고시반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에게도 열심히 시위 동참을 호소했는데, 법대 동기였던 고조흥이 “우리는 너와 생각이 다르다”며 쫓아냈다고 한다. 하지만 얼마 안 가 치른 사시 1차 합격자는 고시반에서 공부 안 하고 민주화 운동을 했던 문재인 혼자 뿐이었다는 반전이(…) 이 고조흥이란 법대생은 문재인이 군대를 가 있는 동안 먼저 검사 등 법조계 경력을 쌓기 시작해 후에 한나라당 후보로 재보궐선거에 당선돼 18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주간경향[20] 3차는 면접이였는데 ‘별 일’ 없으면 합격하는 요식행위였다. 단 문재인의 경우가 그 ‘별 일’에 해당되는 케이스였다.[21] 80년까지는 사시 합격 인원이 100명 선이었다.[22] 경희대 대학원장이 육사 1기 출신 김점곤 교수였다. 6.25 전쟁 때 평양에 제일 먼저 진입한 연대장으로 기록돼 있는 인물이다. 그가 중대장일 때 육사 2기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김점곤 중대장 밑에서(!) 소대장을 했다고 한다. 그가 계엄사 쪽으로 노력을 많이 했다고 한다. 기소 전이라 가능했던 일이었다.[23] 운동권을 하다가 사법시험 합격 후 출세를 위해 군사 독재 정권 편으로 전향을 한 법조인들이 좀 있다. 5공 치하에서 고문 의혹을 받고 있는 정형근 전 의원도 한때는 서울대 학생회장이었고, 시위를 여러차례 주동했다가 사시 합격후 공안검사로 변신했으며, 박근혜 탄핵 당시 박근혜 측에 선 이경재(법조인) 변호사도 마찬가지 테크를 타서 공안검사를 했다.[24] 그렇다고 문재인도 이 면접에서 한 말 때문에 영향이 없었던 건 아니다. 사법시험에는 붙었지만 후술한 대로 사법연수원 성적이 1등이었는데도 차석으로 처리돼 차석 졸업을 했고 판사로 임용되지 못했다.[25] 유독 이 기수에 야권 성향 유명인들이 많은 것은, 12기부터 정치범 전력이 있는 사시 합격자들에 대한 사법연수원 입학 규제가 풀리면서 연수를 받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당시는 전두환 정권이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유혈 진압으로 민주화 세력이 한 풀 꺾였다고 판단해 여러가지 유화책을 펴던 때였다. 그리하여 교복 자율화, 통행금지 해제, 이념 서적 판매 금지 해제 등의 자유화 조치가 일시적으로 취해졌고,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사법시험과 사법연수원에서 소위 운동권 합격자를 받아들였다. 문재인 및 여러 재야 법조인들은 그 혜택을 본 셈이다. 하지만 1980년대 중반 이후, 민주화 세력의 투쟁이 격화되자, 전두환 정권은 다시 폭압책으로 꺼내들게 된다.[26] 문재인을 제친 12기 수석은 박시환 前 대법관인데, 박시환 前 대법관은 이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 때 문재인과 함께 노무현 대통령 대리인단의 일원이었고 탄핵 기각 이후 대법관이 됐다.[27] 문재인 구술”김앤장을 비롯해 괜찮은 로펌 여기저기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다. 하지만 내가 생각했던 변호사 상과는 달랐다. 보통 서민들이 겪는 사건들 속에서 억울한 사람을 돕고 보람을 찾는 그런 모습이었다. 어머니도 모실 겸 부산으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았다.”[28] 노무현과 박정규는 김해에서 고시공부를 함께했던 인연이 있었다. 늦게 사시에 합격한 박정규를 위해 연수원을 마치면 같이 일하자고 하고 본인 사무실에 방과 책상까지 준비했는데 박정규가 검사로 임용되면서, 미안해진 박정규는 문재인을 자신을 대신해 소개해 준 것이었다.[29] 실제는 기존에 노무현이 하던 변호사 사무실에 문재인이 들어갔다고 보는 게 맞는다.[30] 문재인의 회고에 따르면, 공범으로 지목된 인물은 거의 맹인에 가까울 정도로 시력이 나빴고 그것 때문에 군 복무까지 면제받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사건 발생 장소는 완전히 돌밭이었고, 범인과 피해자는 거기에서 서로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벌였다고 한다. 게다가 사건 발생 시각은 달빛조차 없었던 칠흑 같은 밤이었다고 한다.[31] 노무현이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을 제안했을 때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자, “당신들이 나를 정치로 나가게 했고 대툥령을 만들었으니 책임져야 할 것 아니냐” 라고 했고, 문재인은 민정수석으로 끝내고 정치하라고 하지 말라는 두 가지 조건을 걸고 허락했다고 한다.[32] 이때 치아가 10개쯤 빠졌다고 한다. 다음 민정수석을 맡은 사람은 본인을 처음 노무현에게 소개해 주었던 박정규 부장검사였다. 그리고 박정규 다음에 또 문재인이 이 자리로 돌아왔다. 역대 민정수석을 두 번 역임한 사람도 문재인이 유일하다.[33] ‘Impeach’라는 단어를 처음에 보고 이해하지 못해서 어리둥절 했다고 한다. 대통령 탄핵 사태가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기에, 탄핵(impeach)을 영어로 알고 있지 못한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34] NLL 대화록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 것도 이 시기의 비서실장을 역임했기 때문이다.[35] 다른 지역의 경우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 곳도 있는데 사상구 주민들 중에는 사상구엔 수해가 없는 줄 아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36] 사상구는 90년대에 한 번 크게 침수 피해를 입은 적이 있었는데, 그 이후 하천 및 배수 시설등을 대대적으로 정비했다.[37] 원래 모두 한 문장이었는데 선거캠프에 같이 있었던 윤태영 前청와대 대변인이 바꿨다고 한다[38] 하지만 현재 더불어민주당에서 비주류로 분류되는 의원들이 힘을 보탰다는 증언은 거의 없다. 그때 민주통합당 의원들 중에서 사실상 수수방관한 사람들이 많았다는 소리가 들린다.[39] 실제로 2012년 대선 당시 손 후보의 캐치프레이즈 ‘저녁이 있는 삶’은 대선 출마를 선언한 정치인들의 캐치프레이즈 중에 제일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는다.[40] 혹자는 야권 단일 후보라고 명명하기도 했으나, 김소연, 김순자 후보와 단일화한 것이 아니므로, 완전한 야권 단일 후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41] 이때 토론회의 상황을 임재범의 <너를 위해>의 가사를 빌어 표현한 게시물이 인기를 끌었다. 내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너. 이 댓글은 SNL에서 한 번 더 패러디 되기도 했다.SNL코리아 시즌2 참고 영상 이 패러디 영상 자체는 굉장히 잘 만들어진 패러디이기 때문에 한 번 볼 것을 권한다.[42] 거기다가 박원순과 이명박도 박원순과 노무현처럼 원래 친분이 있는 사이였지만, 박원순이 이명박 정부에서 벌였던 적대 세력 사찰 등을 문제삼아 반MB 기치를 내걸고 서울시장에 당선되면서 처음으로 정계에 입문했는데, 이때 친노 진영 인사들도 박원순에 도움을 주는 모습을 보여줬다.[43] 굳이 따지자면 박원순이 문재인을 비판하는 빈도가 조금 더 높다.[44]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애들 또한 잘생기고 예쁜 사람을 선호한다. 그리고 어른들에 비해 감정을 숨기는 능력이 떨어져서(…) 티가 더 난다.[45] 문재인이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올라갔던 시절 청와대 출입기자였다.[46] 참고로 김무성은 정계에서 자신의 호모포비아 신념을 당당히 드러내는 인물이며, 문재인은 본인이 직접 입장을 표한 바는 없으나 성소수자와 그 앨라이들에게도 상당한 지지를 받는 인물이다. 다만, 문재인 역시 동성혼을 지지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탄압받아야 할 일도 아니며, 동성애자들이 주장하는 ‘동성애자 차별금지법’에 대해서도 이미 국가인권위원회 법에 성소수자 차별을 금하는 조항이 있으니 별도의 법을 만들 것까지는 없다는 입장을 밝힌 적이 있었다. 이에 격분한 일부 동성애자들이 그의 정책 회의장에서 소란을 피우기도.[47] 일베 등 극우 사이트에서 대선 후보 CF를 보고 문제 제기를 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들은 이 의자가 이탈리아제로 시가 약 900만 원이라고 주장했으나, 당시 수입 업체는 이 의자는 중국산으로 시가가 90만 원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기사[48] 가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 유명한 ‘임스 라운지 의자(Eams lounge chair)’로, 1950년대에 찰스 임스 부부가 만들어 아직까지도 동일 디자인으로 생산되고 있는 디자인계의 전설.[49] 박원순 시장도 지방선거 당시 비싼 전세집(…)에서 산다는 비난을 들었고, 문재인 전 의원 역시 대선 때 집이 왜 이리 넓냐고 비난받았다. 그 집이 위에 있는 경상남도 양산시 매곡동의 그 집인데, 여기는 시골(…)이다. 그런 비난을 했던 사람들이 부자 동네의 대명사인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단독 주택에서 살고 있었던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선 침묵했으니 문제가 된 것이다. 박원순 시장과 문재인 의원은 정계 및 사회 활동에 입문하기 전까지는 변호사 세계에서 꽤 날리던 사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일반인에 비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50] 쌀→살 같은 식이다. 참고로 김영삼 전 대통령도 경상남도 거제시 출신으로 비슷하게 쌍시옷 발음을 잘 못 했다.[51] 보통 어린 스타들의 경우 대학이 먼저 알아서 특례 입학 등을 시전하여 성적 대비 좋은 학교에 데려오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아이유는 고3 시절 여러 방송과 인터뷰에서 ‘대학에 가도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할 것 같다’며 대학 입학을 포기하는 발언을 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조.[52] 동네마다 있는 폐의류 수거함들의 주된 운영구조가 수집한 의류에서 멀쩡한 것을 분류해 kg당 얼마로 자루에 담아 영리업체일 경우 해외수출, 자선단체일 경우 분쟁지역이나 개발도상국에 기증하는 방식이다. 우리나라도 가난하던 시절에는 이런 식으로 수집된 옷을 기증받아 소독을 거친 후, 학교나 교회 등지에서 배포했다고 한다.[53] 만약 이 의혹이 사실이라면, 헌법 제34조 6항 :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를 어긴 게 된다.[54] 일제강점기 때 일제에 의해 강제로 일본으로 끌려가 살인적인 노동에 시달렸던 강제 징용 피해자들이 모여 살고 있는 마을이다. 무한도전에도 소개된 적이 있었다.[55] 이재명 문서와 함께[내용] : 문재인에게 5글자로 질문을 하면 문재인이 답변을 하는 즉석 이벤트에서 한 여대생이 ‘금괴왕 진짜?’라고 질문하자, 문재인이 “저에게 금괴 200톤이 있죠. 그걸로 여러분들의 일자리 문제를 해결해 드리겠습니다”라고 재치있게 대답한다.[57] 후일담으로 이 만화가 YTN에서 금괴 루머를 퍼트린 가짜 뉴스의 예로 소개되기도 했다. 원 내용은 이런 루머를 비꼬는 것에 가까움에도.[58] 두 사람의 합동법률사무소 내에 무료로 상담해주는 노동법률상담소도 있었다.[59] 상임집행위원장은 당연히? 노무현이였다.[60] 기사 참고. 당시 노무현은 이사로 지냈다고 한다.[61] 3당 합당 이후 민주당 후보가 처음으로 사상구에서 당선된 사례다. 부산에서 3당 합당 이후 민주당 후보가 최초로 당선된 사례는 부산 사하구 을의 조경태 의원이었다. 그런데 2016년 1월 새누리당으로 넘어갔다.[62] 역대 대통령 후보들 중 득표수 2위. 이전의 1위였던 노무현의 기록까지 넘은 득표수였으며, 낙선한 대통령 후보들 중 가장 많은 표를 받은 후보라는 타이틀도 겸하고 있다.
분류

· 대한민국의 정치인

· 국회의원

· 경상남도 출신 인물

· 문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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